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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변화에 귀 막은 한국 좌파


케인스는 거시경제학을 탄생시킨 명저 '일반이론'에서 "경제와 정치철학 분야에서 25세나 30세 이후 새로운 이론에 영향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했다.

유럽 좌파는 "근로복지ㆍ투자촉진"

대공황으로 실업 문제를 다루는 거시경제학이 탄생했지만 완전고용을 가정한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이 주류를 차지하던 종래의 조류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였다. 실제로 신고전학파 거시경제학은 이후 반세기를 지배했고 근년에는 아예 거시경제학의 미시화마저 진행되고 있다. 한번 물든 사상은 변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지난 1960~1980년대 중반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노동여건은 열악했고 유신에 이어 신군부가 등장했다. 이에 저항하는 노동쟁의와 민주화 투쟁은 더욱 가열됐다. 당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필자는 투쟁도 중요하지만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학파보다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와 영국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가졌고 정치경제학의 본고장이자 복지 선진국인 영국 유학을 떠났다. 그 후 독일경제연구소에서 연구하기도 했다.

필자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나중에 국회부의장을 지낸 야당 중견 국회의원과 함께 독일 사회시장경제의 근간인 노사공동결정제도와 독립된 중앙은행제도를 개정 헌법에 포함시키기 위한 운동도 벌였다. 공청회 등 격론 끝에 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은 무산되고 한국은행은 헌법기관은 안 됐지만 독립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한은법이 개정됐다.

지금 회고해 보면 노사공동결정제도는 노사 간 이성적ㆍ합리적 타협을 전제로 하는데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타협보다 투쟁 일변도인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제도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한국은 많이 변했다. 산업화 시대의 열악했던 노동여건은 많이 개선됐고 임금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전자ㆍ자동차ㆍ선박ㆍ철강 등은 세계 일류로 자리매김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를 넘어섰다. 정치 민주화도 이뤄져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제위상도 높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20개국(G20) 의장국이 되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데 이어 곧 세계은행 총재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 하락으로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증가에 따른 양극화 심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개선된 노동환경과 정치적 민주화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제조류도 많이 변했다. 필자가 그토록 부러워하고 유학까지 갔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시장경제제도는 1980년대 이후 재정적자ㆍ국가부채 급증, 세계화에 따른 해외투자 증가, 성장률 하락, 고령화 심화, 산업구조 고도화 등 환경 변화에 부응해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복지제도는 국가가 모든 국민생활을 보장하던 보편적 복지에서 개인의 근로와 책임이 강조되는 근로복지로, 조세제도는 법인세 인하 등 투자촉진적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인 중저(中低)성장으로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완전실업보다는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노동정책도 선회하고 있다. 당연히 필자의 경제관도 많이 변했다.

새로운 조류에 귀 열고 미래 고민해야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부지만 아직도 1980년대 산업화 시대의 노동환경과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좌파 세력들이 국내외 환경 변화에 귀를 막고 20~30년 전 주장을 계속하며 권력 장악을 노리고 있다. 복지 선진국이고 사회민주주의 본산인 유럽의 좌파 정당들도 자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변화하고 있는 시대다. 한국의 좌파도 국내외 변화와 새로운 조류에 귀를 열고 조국의 미래에 대해 진심 어린 고민을 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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