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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새·풀벌레… 옛 그림에 취하다

동산방화랑 '조선후기 화조도전'<br>정선·심사정·김홍도·신윤복 등 화가 23명 작품 80여점 전시<br>화첩그림 70점은 일반에 첫 선

현재 심사정의 '옥잠화와 색비름, 나비와 메뚜기'

혜원 신윤복의 '화조도첩' 중 '흑고니'

#쪽물을 들인 조선 닥종이에 흰 호분(조갯가루를 빻아 만든 물감)을 살포시 입은 쇠백로가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화첩을 펼치면 쇠백로 10마리가 능수버들 아래에, 혹은 연꽃을 벗 삼아 갈대 수풀 사이에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진 겸재 정선(1676~1759)의 10폭 화첩 '백로도첩'(1729년경)이다.

#흑고니 한 쌍이 안개 자욱한 개울가를 유유히 노닐고, 개구리매가 내려 앉은 수양버들의 잔가지는 미세하게 떨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매실나무로 날아든 참새는 잠을 청하려는 듯 고개를 품 속에 묻고 있다. 가을 정취를 한껏 품고 있는 이 작품은 '단오풍정'으로 유명한 혜원 신윤복(18~19세기)이 남긴 10폭 화첩 '화조도첩'(1809년)이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정선과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 등의 화조그림 화첩이 일반에 첫 선을 보이는 귀한 전시가 열린다. 인사동 동산방화랑은 조선후기 23인의 화조화를 소개하는 '조선후기 화조도전: 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전을 내달 12일부터 31일까지 연다. 화조화는 꽃ㆍ새ㆍ풀ㆍ물고기ㆍ나무ㆍ벌레 등 다양한 자연 소재를 사대부의 감상용으로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이번에 전시되는 80여점 가운데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1707~1769), 단원 김홍도(1745~1806?), 혜원 신윤복의 화첩그림 70여점은 일반에 처음 소개된다. 작품 대부분은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가 개인 소장가 6명이 갖고 있던 화첩들을 빌려 온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겸재의 '백로도첩'. '인왕재색도' 등 유려한 진경산수화로 널리 알려진 겸재가 화조화에서도 탁월한 안목과 실력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쪽빛 한지 위의 흰 호분과 검은 먹의 대비는 산수화 못지 않게 호방한 그의 화풍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그의 오랜 벗 사천 이병연(1671~1751)을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시와 그림을 보완하며 역량을 키웠던 평생지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겸재가 환곡관리 잘못의 책임을 지고 곤장 100대를 맞았던 당시 황해도 배천군수인 사천을 찾아가 위로하며 '백로도첩'을 그렸고, 사천은 여기에 발문을 썼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겸재는 당시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백로의 흰 색을 표현하기 위해 화선지를 쪽빛으로 물들이고 물감을 덧칠했다"고 설명했다.

김홍도의 '수금ㆍ초목ㆍ충어 화첩'(1784년) 10폭은 중국제 고급 화선지 위에 수묵담채 화법으로 매미와 황쏘가리, 오리, 갈대꽃 등을 소담스럽게 담았다. 특히 그 동안 학계에서 안성 출신이라고 알려진 단원이 서울 출신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발문이 포함돼 주목된다. 이 교수는 "화첩의 마지막 폭인 '갈대꽃과 게'에 '갑진년(1784년) 6월 단원이 임청각 주인을 위해 그리다'라고 썼고, 이듬해 당대 문인 권정교가 화첩 발문에 '김홍도는 洛城(낙성) 河梁人(하량인)'이라고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그림은 단원이 1784년 정월 안기찰방으로 부임한 뒤 그 해 6월 여름 임청각 주인 이의수에게 그려준 것으로 낙성은 한양을, 하량은 청계천을 뜻한다"고 말했다. 현재 심사정(1707~1769)의 '꽃과 나비·풀벌레 화첩' 8폭도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맑고 투명한 수묵채색으로 모란ㆍ양귀비ㆍ맨드라미ㆍ월계화ㆍ국화ㆍ옥잠화 등을 화사한 색감으로 표현해 조선후기 화조화의 경지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과 이정우 한국관상조류협회장에게 감수를 받아 그림에 나오는 식물과 조류의 토종 여부를 밝혀낸 점도 눈길을 끈다. (02) 733~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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