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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구려를 기억하자

[기고] 고구려를 기억하자 정송학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이 고조선과 고구려를 기억하고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전통에 따른 것은 아니다. 고조선-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계승 의식은 중국의 역사 사서들에서도 인정된 것이었다. 또한 고려 말 승려 일연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었음을 기록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도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 하여 고구려가 역사적 공동체였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역사인식은 이후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주장한 고려는 물론이고 조선에까지 이어졌다. 가령 조선시대 청나라에 연행사로 갔던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는 만주의 고구려 안시성에 올라 고구려를 기억하고 자신이 고구려인임을 인식했다고 한다. 고조선에서 고구려-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계승 의식은 오랜 전통과 정당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기억이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와 기억이 지금 도전받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련의 후속작업이 그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영토 안에서 일어난 역사를 자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일면 이런 중국의 역사인식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조선과 고구려가 중국사일 수는 없다. 이미 중국의 역사전통에서는 고조선과 고구려 등 우리 고대의 국가를 자신들의 영역이나 역사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자신들과 구별되는 이역(異域)으로 규정했다. 중국은 자국의 이런 역사전통을 무시하면서까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이를 역사적 사실로 규정하려 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외교문제로 비화될 것으로 우려해 중국의 이런 역사침탈에 정당한 비판조차 삼가고 있다. 물론 중국이 남북한을 둘러싼 정세와 그 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북한정권의 대응이 미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새로운 ‘역사기억’은 우리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 고대사에 대한 분명한 역사인식조차 표현할 수 없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과거조차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하고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외부의 도전에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면 어떻게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을까. 역사는 집단의 기억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며, 그래서 예로부터 권력이었다. 오늘날 사회에서 권력이 역사를 독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국가간 관계에서 역사는 권력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지금 자신들의 역사전통을 무시하고 날조된 기억을 만들어 역사화하고 있다. 신라사까지 자국사의 범주에 넣으려 한다는 중국의 최근 움직임은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문제는 중국이 동북공정과 그 후속작업을 통해 그들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기억을 사실(史實)로 하기 위한 ‘증거’와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은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학계는 지적하고 있다. 이 ‘중화민족’에는 우리 고대사의 주역들이 포함돼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외부의 충격을 받을 때 고구려를 기억해내고 있으며 심지어 판타지 속에서 느끼고 즐길 뿐이다. 드라마 ‘주몽’이나 ‘연개소문’, 혹은 ‘대조영’은 드라마일뿐이다. 방송으로 한껏 올랐던 국민적 관심은 드라마에 있는 것이지 고구려에 있는 것은 아니다. 혹 고구려에 대한 ‘기억’이 고조됐다 할지라도 그것은 방송 종료 후 기억 속에서 내쳐질 뿐이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시골의 아낙네나 어린아이까지도 고구려 시조 동명을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동명왕편’을 쓰게 된 연유를 밝혔다. “동명의 일은…국가창건의 신성한 사적이니 이를 서술하지 않는다면 후세에 장차 무엇을 보겠는가. 이 때문에 시를 지어 기록하노니 무릇 천하가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땅임을 알게 하려 함이다.” 동명신화가 역사 그 자체는 아니기에 이런 신화적 역사인식을 우리가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왜 기억하고 이를 ‘기록’해 미래에도 이야기되고 기억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기에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요, 고조선 이래 형성돼온 한민족 형성과정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지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신화나 판타지에만 머물고 미래로 가지 못한다면 수천년간 이어져온 고구려의 역사와 그 역사에 대한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래 역시 사라질 것이다. 고구려가 우리의 미래이기 위해서는 현실 속에 항상 살아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남한 내 최대의 고구려 유적이 있는 아차산을 중심으로 고구려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며 일상에서 호흡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무엇의 부속물도 아닌 고구려 그 자체로서 말이다. 입력시간 : 2007/06/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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