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현실화할 개발자를 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얼마 전에 만난 청년 창업가 정모(29)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함께 일할 이공계 출신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진이 빠진 상태였다. 6개월간 주변 인맥과 온라인 채용 공고 등을 통해 이공계 출신 17명을 어렵사리 만났지만 허사였다. 성장성 높은 사업비전과 엔젤투자를 통해 확보한 넉넉한 실탄 등 2~3시간에 걸친 대화에도 그들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최근 창업 활성화 정책에 따라 자금 사정은 나아진다고 하지만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 5일 정부는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통해 창업이 쉬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창업보육 서비스는 물론 자금조달까지 정부가 앞장서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창업 생태계를 위해 이공계 인재를 키우겠다는 정책은 들리지 않는다. 창조경제 실현계획이 발표된 후 한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가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벤처기업의 숫자 확대나 정부지원의 양을 강조하는 데만 치중하면 벤처의 미래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벤처기업의 개발자 수요는 폭발적이다. 월급을 올려서라도 인재를 데려오고 싶다고 하소연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업계 바람과 달리 이공계 전공자들은 대기업이나 의학ㆍ법학 전문대학원 등의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야심찬 발표에도 "개발자 육성, 유인 정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벤처 숫자를 늘리는 정부의 인위적인 지원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창업이 쉬운 나라보다 창업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 KAIST 교수는 "코딩도 할 줄 모르는 개발자들이 우리나라 벤처기업에 너무 많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이런 개발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벤처업계 현실이다. '창업이 쉬운 나라'보다 '개발자를 구하기 쉬운 나라'가 우선이 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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