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해당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미 현지 시설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계약을 뒤엎는 결정이라며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준비한 우리 기업들로서는 예기치 못한 변수에 직면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근거한 보조금 지급 대가로 삼성전자·마이크론·TSMC와 같은 기업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인텔에 109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10%의 지분 인수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삼성전자 등에도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이는 반도체 기업의 대미 투자는 관세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주는 것은 세금 낭비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막대한 자금을 갖고 있는 기업에 보조금을 왜 줘야 하느냐”며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기업 지분을 받아 미국 납세자에게 수익을 돌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배당, 나아가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 등으로 미국의 세수를 충당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소식통은 “러트닉 장관이 이 아이디어를 추진해왔고 트럼프 대통령도 마음에 들어한다”고 전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37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가로 지난해 말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47억 4500만 달러(약 6조 6400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4억 5800만 달러(약 6410억 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아직 수령하지 않은 상태다. 러트닉 장관은 인텔 지분을 취득하는 대가로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외국 기업의 지분 취득 시 미국에 유리한 의사 결정을 요구할 수 있다. 나아가 반도체 분야의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업의 부활을 원하는 미국 정부가 민감한 경영 정보를 공유하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0일 해당 보도와 관련해 “정상회담과는 상관없는 금시초문”이라면서 “칩스법에 따른 계약은 이미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텔이라는 기업과 외국인 투자 기업은 상황이 다를 것이라는 일반론적인 예측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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