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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선청화' 기획전

조선 왕실 美의 정수… 그 푸른빛에 물들다


세종 29년(1447년) 왕이 예조에 명하기를 "문소전과 휘덕전에 쓰는 은그릇들을 이제부터 백자기로 대신하라" 했고 이후 세종은 어기(於器)로 백자만을 썼다.

상감청자가 고려 귀족미의 절정을 보여준다면 조선 왕실 미의식의 극치는 바로 이 '청화(靑畵)백자'가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보물 10점을 포함한 500여점의 청화백자를 모아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전을 기획특별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이처럼 청화백자에만 집중한 전시는 최초이며 최대 규모다.

청화백자는 중국 원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명나라 때 유럽으로 수출돼 18세기 유럽 백자탄생의 배경이 됐다. 조선의 청화백자는 15세기 무렵 처음 만들어졌는데 푸른색을 내는 안료인 코발트는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귀한 재료였다. 그래서 왕실 이외에서는 제작과 사용이 금지됐다. 또한 조선청화는 왕실 산하 도화서 화원들이 직접 광주 관요(도자기 공장)에 가서 무늬를 그려넣었으니 기형(器形)은 조선 성리학을 품은 사대부처럼 당당하고 장식은 당대 최고의 수준을 유지했다. 그래서 총 5부로 구성된 전시 중 1,2부는 청화백자와 왕실의 관계에 집중한다. 동국대박물관 소장 국보 176호 '백자청화 송죽문 홍치이년명호(1489년)'를 비롯해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국보 219호 '매죽문호',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 222호,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 등 현존하는 최고의 왕실 청화백자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한중일 3국에서 동시에 사랑받은 청화백자를 각 나라별로 어렵게 모아 한 공간에 배치한 것 또한 볼거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극복한 17세기 후반 이후, 영·정조 때에 이르러서는 왕실이 문인 취향의 선도자가 됐고 청화백자에도 문인풍이 스며들었다. 사군자나 산수가 그려진 청화백자는 문방구로서의 실용과 완상(玩賞)의 목적을 겸하는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어 조선 후기에는 왕실 전유물이던 청화백자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이는 교역 확대로 안료 수입이 활발해진 영향이며 조선 사회의 민중 수준이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청화백자의 소재는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전시는 마지막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5부에서는 현대에 살아 숨쉬는 청화백자의 미감을 주제로 푸른색을 즐겼던 수화 김환기의 그림들과 이우환의 푸른색 '점으로부터'를 비롯해 박영숙·황갑순 등 현대도예가들의 작품이 선보인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02)1688-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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