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1·2심 모두 김지태씨가 정권의 강압에 의해 재산을 헌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의사 결정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된 상태는 아니라서 증여를 무효로 볼 수 없고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기간도 지났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민사12부(김창보 부장판사)는 16일 김지태씨 장남 영구(75)씨 등 유족 6명이 국가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등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5·16 혁명정부가 중앙정보부를 통해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강압적으로 김지태씨 재산을 헌납하도록 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김씨의 의사 결정의 여지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구속된 김씨가 수갑이나 포승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부인과 면회한 점, 부산교도소 병동에 특별 대우를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강박의 정도는 증여의 무효나 취소 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며 “김씨의 증여가 무효라고 할 수는 없고 증여한 때로부터 10년의 제척기간이 지나 취소권이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주식을 증여한 상대방을 1심은 정수장학회, 항소심은 국가로 각각 달리 판단했지만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부산지역 기업인으로 2~3대 민의원을 지낸 김지태씨는 1962년 부정축재자로 분류돼 재판을 받던 중 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 등을 정권에 증여했고, 이 재산으로 정수장학회 전신인 5·16 장학회가 설립됐다.
당시 검찰은 김씨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해 징역 7년을 구형했고, 김씨는 결심공판 직후 언론3사 주식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쓴 뒤 공소가 취소돼 풀려났다.
김씨 유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뒤 “정수장학회는 빼앗아간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우면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작년 2월 “강압에 의한 증여를 인정한다”면서도 이를 증여의 원천 무효 사유가 아닌 취소 사유로 보고 취소권 행사의 제척기간이 지났다며 김씨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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