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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52> ‘배신자’에게서 정의를 발견하다?


내부고발자의 양심선언. 조직 내부인으로서만 알 수 있는 부정, 부패, 불법, 비리 등을 공개하는 행동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일까요? 기업이 투명 경영을 강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완벽히 투명해질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내부자와 외부자 간에는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symetry)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양심고백’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법으로 보호받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해 내부고발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한때나마 몸담았던 조직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해당 조직 입장에서는 등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에 해당하니까요.

녹두를 물에 불려 싹을 낸 나물을 뭐라고 할까요? 정답은 ‘숙주나물’입니다. 숙주나물이란 이름은 조선 시대 때 붙여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신숙주(申叔舟)는 세조 때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여섯 신하를 고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인해 ‘배신자’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의 행동에 분개한 백성들이 만두소를 만들 때 짓이겨 사용하는 나물을 대하듯 신숙주를 미워한다는 뜻에서 숙주나물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녹두나물이 잘 쉬기 때문에 쉽게 변절한다는 뜻에서 ‘숙주나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도 말합니다. 정확한 유래가 무엇이든 신숙주의 배신에 대한 대가는 적어도 많은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조의 입장에서 신숙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세조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의 손을 들어준 그의 능력을 높이 사 곁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와 의심을 늦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을 잘 믿지 않는 세조의 성격 탓에 신숙주는 이시애의 난으로 누명을 쓰고 하옥된 적도 있지만, 억울함이 밝혀져 풀려났고 병조판서, 대제학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랐죠. 결론적으로 둘은 한 배를 타고 끝까지 함께 한 관계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조의 정의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 ‘신숙주의 정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신숙주는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은 인(仁)이요,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은 의(義)요, 태만하지 않는 것은 근(勤)이요, 과감한 것은 민(敏)이다. 인의를 지키고 근민하게 행동하면 장차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라며 조선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곱씹어보면 신숙주의 정의는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향한 것이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변절자, 배신자라는 낙인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뜻을 계속 펼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판단한 정의는 물론 잘못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숙주, 내부고발자처럼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손가락질을 어떤 이들에게는 박수를 받겠죠. 최소한 본인이 생각하기에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 행동했다는 전제가 성립된다면 말입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어떻게 귀결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같은 행동도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쪽의 정의’가 어떤 평가를 받을 지도 지켜봐야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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