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자본이 러시아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러시아 주식시장이 바닥을 모른채 가라앉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10일(현지시간) 증시 부양을 위해 지난해 11월이후 최대 규모인 100억달러의 유동성을 투입했지만 이날 러시아 증시(RTS 지수)는 4.4% 하락해 1334.33을 기록했다. 러시아 증시는 지난 5월 고점 대비 반토막(49% 하락)이 나 지난 2년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시가 총액도 7,500억달러나 증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 증시는 저평가돼 있으며 따라서 외국자본의 탈출 행렬은 곧 진정될 것"이라며 시장을 다독였으나 투자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모스크바 소재 투자은행인 트로이카 다이얼로그사의 전략가 킹스밀 본드는 " 모스크바 증시에는 심각한 우울증세가 드리우고 있다"며 "이 정도의 하락이면 바닥으로 봐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점이 아닌 것 같다"고 푸념했다. 외신들은 러시아 증시의 하락이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그루지야 사태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때 배럴당 150달러를 육박했던 국제 유가가 100달러선으로 떨어지고, 러시아의 주요 생산자원인 천연가스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율은 1ㆍ4분기 8.5%에서 2ㆍ4분기에는 7.5%로 주저앉았다. 이런 추세는 3ㆍ4분기에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난 신용경색 징후가 러시아에도 나타나고 있어 상황이 악화될 경우 10년전 외환위기 사태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 10년간 큰 성공을 거둔 가즈프롬 등 주요 에너지 기업들도 이제는 수익 감소와 유동성 고갈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가즈프롬은 연초 올 연말쯤 시가총액이 1조달러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지금은 2,000억달러를 밑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경제가 안정되려면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시장에 대한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라고 충고했다. 러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반시장적인 무분별한 발언과 행동이 투자자들을 내쫓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영국의 석유개발업체 BP의 러시아측 합작사인 TNK-BP에 대한 러시아 검찰의 가격 담합 조사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러시아 철강업체 메첼 경영진에 대한 공개적인 탈세의혹 비난 등을 시장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유동성 투입 발표 연설에서도 서방국가들을 비난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자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스템을 빨리 수리해야 해야 한다"면서 "러시아 경제의 펀드멘탈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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