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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관음과 노출의 아슬아슬한 동거

■ '오버래핑 이미지'의 작가 이호련<br>여성의 하체 소재 중첩된 이미지로 표현 <br>소더비 등 외국서 큰 인기

이호련



예술적 허용은 일련의 사회적 규약을 뛰어넘는다. 시적ㆍ문학적인 차원에서는 사회적 규약을 초월한 어법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미술에서의 허용은 감히 공식석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또 보게 한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ㆍ1819~1877)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상의 근원'은 누워있는 여성의 하반신 누드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예술과 외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한 벽면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실을 직시한 그의 화법에는 '불경스럽다'는 비난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하지만 작가가 거시적인 역사나 그 속의 주인공 대신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시선을 돌려놨다는 점에서 그가 남긴 미술사적 업적은 적지 않다.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1832~1883)도 마찬가지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나신의 창녀를 그린 '올랭피아'를 완성한 후 그는 화단과 대중으로부터 쏟아진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외설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창녀라는 하층계급의 '천한' 여자가 감히 신화 속 여신의 자태로 묘사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관객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쏘아보는 듯한 여인의 도발적이고도 공격적인 눈빛은 관람객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불편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반발이 더 컸던 것이다. 한국의 젊은 작가 이호련(31)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드러낼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욕망과 시선에 대한 인간의 잠재된 갈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는 여성의 하체를 소재로 나풀거리는 치마와 옷자락을 중첩해 그린 이미지로 유명하다.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만난 작가에게 '왜 치마를 들추느냐'고 감히 물었다. "(치마를) 들춘다고 하기 보다는 '들춘 것처럼 보이는 형식'으로 이미지를 조작한 것이죠. 들춰진 옷 사이로 속살을 보는 것과 모델 자신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짝 드러내 보여주는 것, 즉 관음과 노출이라는 두 가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접점을 찾아서 보여주는 것이죠. 중첩된 이미지가 바로 제가 그리는 '오버래핑 이미지(overlapping imageㆍ이호련의 작품 제목이기도 함)'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작품 속 인물들은 알 수 없는 시선의 존재를 감지한 듯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위험하면서도 설레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애매한 손동작은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는 것인지 끌어내리는 것인지 행위마저 모호하다. 그래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몽환적이다. "남자 화가의 시선을 염두에 둔 여성 감상자라면 다소 불편하게 여길 수 있겠다는 의견도있더군요. 하지만 작품을 보고 받아들이는 각자의 수용방식은 다르니까요. 오히려 작품을 보고 자기만족적인 관심을 보이는 여성 분들도 꽤 많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은 대부분 지인이나 후배이지만 고난도 노출(?) 장면은 전문 모델을 기용해 진행한다. 작가는 신체 이상으로 옷과 장소 등 배경을 중시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동대문 상가나 이화여대 앞 등 이른바 여성 패션의 거리로 불리는 곳을 다니면서 직접 옷을 구입하기도 하고, 작품에 어울릴법한 공간을 찾기 위해 사무실이나 집 혹은 호텔을 섭외한다. 마치 영화 감독처럼 그는 모델의 세심한 손동작까지도 설정해서 지시한다. 다음은 연출한 장면을 수십 장의 사진으로 찍고, 겹쳐 그릴만한 절묘한 동작 두세 장을 결정한다. 바로 이 순간이 작가의 창작 에너지가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이다. "영국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ㆍ72)는 1980년대에 사진 콜라주 방식의 작업을처음 선보였습니다. 가령 도로를 부분부분 촬영해 한 데 붙여 도로풍경을 만드는 식인데요,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큐비즘을 완성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죠. 하나의 사물을 다른 시선에서 본 장면들의 조합에 대한 그 느낌이 저의 겹쳐진(overlapping) 이미지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호련의 작품은 국내외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인기가 높다. 2007년부터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이 출품되기 시작했고, 세계 3대 경매회사인 소더비ㆍ크리스티ㆍ필립스에 모두 선보이기도 했을 만큼 그의 대중적인 인기는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지난해 10월에 열린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시장 침체로 전반적인 낙찰 가격이 높지 않았는데 반해 그의 작품은 추정가의 2배가 넘는 가격(3,250만원)에 낙찰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시카고ㆍ마이애미ㆍ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서 외국인 컬렉터들의 꾸준한 호평도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남의 옷을 들추는 작품과는 반대로 작가 자신은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안간힘을 쓰는 듯 하다. "전시장 앞에 커다랗게 붙은 제 이름만 봐도 낯 뜨거워요. 그림이 잘 팔려 관심도 많이 받지만요. 시장과 가격이란…글쎄요, 자랑할 만한 것만은 분명 아니잖아요. 연구와 노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건 작가의 공통된 의지 아닐까요. 또 굳이 드러내고 소문 내는 게 제 성격에 맞지 않기도 하고요." 그동안 여성의 하체를 클로즈업해 그리던 작가는 신작에서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았다. 조금 멀어진 대신 여성의 전신과 주변 배경까지 담아냈다. 익명의 여인이던 대상이 구체화돼 드러나면서 시선의 농도가 진해졌다. 더 야해졌다는 얘기다.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르다 상체를 굽혀 구두를 매만지는 여성의 뒷모습이나, 소파 혹은 책상 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윗옷만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움직이는 여인을 뒤에서 포착하기도 했다. 벗는 장면과 입는 장면이 중첩된 이미지는 여전하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지겹죠. 전작까지는 여성이란 주체의 옷과 몸 등 대상에만 집중해서 보이지 않는 표정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면, 이제는 전체를 보게 됐어요. 그 공간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비중까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하나로 겹치던 것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보여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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