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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가진 것 나누는 정의로운 사회


교수에게는 7년마다 연구년이라는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사람과 세상 만물을 모두 쉬게 했다는 유대인들의 안식일 제도에서 따와 안식년이라고도 한다. 필자도 올해 이 혜택을 받았는데 평생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의 연구책임교수로 초청받아 재단을 조직하고 사업을 펼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연구년이 되면 밤새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꿈은 깨졌고, 교수에게 주어진 큰 축복 중 하나인 불특정한 출퇴근 시간마저 포기해야 했다. 모름지기 학문은 여유에서 탄생한다. 사색과 생각의 돌파를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자를 뜻하는 스칼러(scholar)도 그리스어의 여유(skhole)에 어원을 두고 있다.

기술ㆍ노동ㆍ재능기부 줄이었으면

플라톤아카데미는 원래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있던 철학자 플라톤의 교육기관이었다. 기원전 387년에 세워진 이 곳에서 서양의 철학적 기초가 마련됐고 아리스토텔레스도 20년간 여기에서 공부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태동했던 플라톤아카데미는 기원후 529년에 문을 닫았다. 서구사회에 지성의 빛을 비추던 플라톤아카데미가 문을 닫자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플라톤아카데미가 부활한 곳은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였다. 르네상스를 견인하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마르실리오 피치노, 폴리치아노, 피코 델라미란돌라와 같은 학자들과 함께 플라톤의 철학을 부활시키면서 인류 지성사의 전면에 재등장했다. 이 곳에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플라톤의 전집(43권)이 처음 라틴어로 번역됐다.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은 서구사상사에서 플라톤이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이렇게 중요한 플라톤의 철학이 모두 라틴어로 번역됨으로써 르네상스는 시대의 정점을 향해 마지막 창조의 불꽃을 불태우고 마침내 유럽 사회는 근대로 진입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며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던 데카르트, 북유럽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도 플라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피렌체의 플라톤아카데미는 유럽 근대의 사상적인 요람이었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부활됐던 플라톤아카데미는 '위대한 자'로 불렸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임종한 지난 1492년 문을 닫았다.



인문학적 성찰의 삶 확산 나서야

플라톤아카데미는 이번에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서 2010년 문을 열었다. 르네상스의 마지막 정점을 향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지적 추동력을 발휘했고 서구 근대의 시작을 알렸던 지성의 선구자였던 플라톤아카데미의 정신을 잇겠다는 40대 후반의 몇몇 기업가들이 뜻을 함께 모았다. 여기에 몇 명의 학자들이 더 뜻을 모아 부자는 돈을 기부하고, 학자는 지식을 기부한다는 간단한 정신에 힘을 뭉쳤다. 한국 인문학을 심화 발전시키고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사회에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위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 것이다. 현재 교수들의 지식기부가 줄을 잇고 있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도 곧 방한해 우리와 함께 지식기부를 하기로 약속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정의란 기술ㆍ노동ㆍ재능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새로운 세상은 독점이나 고립으로 도래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사회는 기업가와 학자들, 그리고 시민들이 가진 것을 나눌 때 찾아온다. 우리나라에 플라톤아카데미가 더 많아져 안식년을 기부하는 교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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