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공사가 한창인 대구 달서구 성당동의 한 아파트단지. 육중한 콘크리트 골조들이 거대한 잿빛 숲을 이루고 있어 동네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다. 무려 3,466가구 규모로 ‘미니 신도시’급인 이 단지는 아파트 브랜드 파워 1, 2위를 다투는 두 건설사가 공동 시공을 맡은 덕분에 지난 6월 분양 이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참담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일반분양으로 나온 1,038가구 중 계약된 집은 지금껏 290여가구에 불과하다. 72%가 미분양이라는 얘기다. 인근 중개업소의 한 관계자는 “그것도 한참 부풀려진 숫자다. 조합 쪽 얘기로는 실제 60여채밖에 안 팔렸다고 하더라“며 “2억4,000만원짜리 분양권을 20%나 싸게 내놓아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분양아파트가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지방경기를 헤어나기 힘든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 가릴 것 없이 미분양아파트가 넘쳐나는 통에 기존 주택 거래까지 거의 끊겼다. 거래가 꽉 막혀 돈이 돌지 못하니 준공 후에도 입주하지 못하는 ‘불 꺼진 아파트’마저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5일 서울경제가 16개 광역시ㆍ도에 조사한 결과 7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아파트는 8만9,972가구, 임대주택까지 합하면 무려 10만2,306가구에 달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10만2,701가구) 이후 9년 만의 최대치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최근 한달여 동안 이른바 ‘밀어내기’ 분양물량이 쏟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8~9월의 미분양아파트 수는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4일 1~3순위 접수를 마감한 경기 남양주시 진접지구에서는 5,927가구의 절반인 2,936가구나 미달 처리돼 미분양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지방에 비하면 ‘분양 무풍지대’나 다름없던 수도권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역별로는 경남이 1만2,414가구로 대구(1만2,179가구)를 제치고 전국 미분양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충남(9,938가구), 부산(9,621가구), 경북(8,541가구), 광주(7,168가구) 순이었다. 서울ㆍ인천ㆍ경기 등 수도권 지역은 총 5,520가구로 전달(5,560가구)에 비해 미분양이 거의 줄지 않았다. 광주와 충남은 각각 전달보다 13.3%, 11.6%씩 미분양이 줄어든 반면 경북(11.4%), 울산(13.9%) 등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단순한 미분양뿐 아니라 ‘준공 후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부산만 해도 미분양 9,621가구의 22%인 2,162가구가 완공 이후까지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2~3년 전 시작된 과잉공급의 후유증이 올 들어 확산되고 있다는 뜻인데 불 꺼진 아파트는 미분양 증가세와 중첩돼 시장 침체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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