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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4월 20일] 은행이 건전해야 경제 회복

이재웅(성균관대 명예교수·경제학)

우리나라 은행들은 해외차입 의존도가 높은데다 원화가치까지 급락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다른 나라 은행보다 심하게 받고 있다. 한국이 이번에 또다시 외화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은 상당 부분 은행이 해외에서 단기차입금을 대규모로 늘려 중소기업 및 주택금융 등에 대한 대출을 크게 늘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이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적정수준의 대출을 했다면 유동성 위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은행들은 소위 엔캐리 트레이드, 즉 금리가 싼 일본 자금을 빌려다 국내에서 금리차익거래를 하느라고 대출을 과도하게 늘려왔다. 그 결과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악화됐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은행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7년 만의 최저치인 10.79%로 떨어졌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글로벌 금융경색으로 외국투자가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국내 금융시장은 심각한 신용경색에 빠졌다. 단기유동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신용경색이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돼 불황이 심화되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정부는 위기에 빠진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은행채무 지급보증, 은행채 매입, 달러화 공급 등 다각적인 금융구제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유동성 불안은 어느 정도 완화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글로벌 신용경색이 장기화되면 은행의 자산건전성은 또다시 악화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수출이 크게 둔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은 급락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낮고 자산건전성이 악화된 경영환경에서 대출은 위축되고 신용경색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용경색이 심화되면 멀쩡한 기업도 도산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은행은 정부의 각종 지원과 한국은행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받으면서도 기업대출을 꺼린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ㆍ영국 등에서도 은행들이 금융위기에 살아남기 위해 대출기준을 강화하고 금리를 높이는 등 대출을 억제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대출여력을 확대하기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ㆍ은행자본확충펀드 등을 조성하고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도록 했다. 그러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면 대출자산을 줄이고 증자 등으로 자기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결국 은행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신용경색 해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기침체기에 돈이 돌게 하면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그 결과 은행도 부실자산이 감소하고 수익성이 개선돼 금융위기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개별 금융기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융불안이 고조되고 대출이 부실화될 우려가 큰 불안한 상황에서 대출을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출여력을 높여준다고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지는 않는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다. 금융정책 당국의 올해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는 어떻게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실물과 금융부실’의 악순환을 끊고 금융위기를 해소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금융위기의 딜레마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올 들어 은행의 신용보증 비상조치를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관의 심사기준을 완화, 중소기업이 보증서를 쉽게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은 신용보증을 담보로 대출할 경우 자기자본비율 부담 없이 중소기업에 대출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위기상황이고 비상사태이다. 정부 지원에 따르는 도덕적 해이를 따지면서 중소기업의 신용경색을 해결할 수는 없다. 돈이 돌게 하고 은행이 대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며 은행에 부담시킬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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