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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인가 아닌가." 지난 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장을 나오는 관객들은 저마다 방금 본 작품의 장르를 되물었다.
이날 개막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분명 드라마와 판소리가 더해진 창극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속살은 이전까지 보고 들어왔던, '창극' 하면 떠오르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동안 전통의 대중·현대화를 강조하며 파격적인 작품을 올려 온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이야기는 이번에도 '쉬운 창극'과 '본연의 맛을 잃은 공연'으로 그 평가가 크게 엇갈릴 듯하다.
브레히트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전쟁통에 버린 자식을 유산 욕심에 되찾으려는 영주 부인과 버려진 아이를 목숨 걸고 정성껏 키운 하녀의 갈등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고민을 그려낸다. 극 중 재판관은 하얀 분필(백묵)로 그린 원 안에 아이를 세운 뒤 두 여인에게 양쪽에서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도록 하고, 아이를 걱정해 손을 놓은 하녀를 엄마라고 판결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파격은 음악에 있다. 사실 국립창극단에 있어 이국적인 소재나 독특한 연출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고대그리스 비극을 창극화한 '메디아'부터 서양 연출가가 재해석한 '다른 춘향'까지 줄곧 신선한 접근이 돋보이는 공연을 올려 왔기에, 서사극의 아버지 브레히트의 작품을 창극화한 이번 작업도 크게 놀랍지는 않다.
중요한 건 음악이다. 기존 작품이 독특한 연출을 가져가되 판소리 고유의 형식엔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면, 이번엔 악기 구성부터 멜로디까지 곳곳에서 실험이 발견된다. 북·장구 등 전통 타악기 위에 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같은 서양 현악기가 내려앉고, 드럼과 전자 기타·키보드까지 더해진다. 독특한 악기 조합은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대중적인 멜로디도 여럿 빚어낸다. 배우 전원이 인간적인 사회를 기원하며 합창하는 '우리는 원을 그리네'를 비롯해 주요 곡 곳곳에 판소리엔 없는 화성 체계를 넣어 선율을 한껏 부각했다.
작창·작곡을 맡은 김성국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앞서 '전통을 뼈대로 하되 새로운 선율어법으로 실험할 부분이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실험의 결과물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무대 위로 올라간 객석은 배우-관객의 거리를 좁혀 색다른 체험을 가능케 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국립극장은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3면으로 가설 객석을 설치했고, 그 중앙에 객석보다 낮게 무대를 꾸몄다. 다만, 객석으로 포위된 무대가 비교적 좁다 보니 음향이 자주 진동 속에 파묻힌다. 특히 객석 앞쪽에선 배우의 목소리와 마이크를 통해 울리는 음성이 겹쳐 들리는 경우가 많다.
음악적 실험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정의신 연출 특유의 해학과 풍자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관객과 한데 어우러진 배우들의 에너지, 그리고 끊임없이 '파격적인 도전'을 시도하는 국립창극단에 대한 박수도 빼놓을 순 없겠다. 오는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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