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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2월29일] 커피하우스 폐쇄령


‘모든 커피하우스의 문을 닫아라. 영원히.’ 1675년 12월29일, 영국 국왕 찰스 2세가 내린 칙령이다. 폐쇄 시한도 불과 열이틀 뒤인 1676년 1월10일로 못박았다. 폐쇄령의 배경은 여성들의 압력. ‘여성을 대표한다’는 단체의 익명 탄원서가 1674년 ‘커피에 대한 여성들의 청원서’라는 이름으로 올라갔다. 골자는 ‘남자들이 가정을 등한시하는 요인인 커피하우스를 없애달라는 것’. 청원서에는 ‘힘을 고갈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음료(커피) 때문에 섹스가 방해 받는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 비슷했다. 1645년 영국에 처음 소개된 커피하우스는 한 잔에 1페니만 내면 무한정 앉아서 토론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남성들의 사교명소로 떠오르며 520여개 업소가 밤새 북적거렸다. 신분의 고하와 재산 유무에 관계없이 정치든 경제든 열띤 토론이 벌어졌기에 ‘페니 대학’으로도 불렸다. 실체 여부도 불분명한 ‘여성단체’의 청원서를 내세웠던 국왕의 진짜 목적은 정치활동 규제에 있었다. 폐쇄령의 문구에 그 뜻을 노골적으로 담았다. ‘불만을 품은 자들이 모여 국왕과 각료들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장소는 없어져야 한다.’ 국왕의 뜻은 통했을까. 정반대다. 불과 10일 만에 폐쇄령을 거뒀다. 정파와 신분ㆍ직업을 떠나 모든 남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커피하우스는 머지않아 홍차에 밀려났으나 경제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선원들이 주로 찾던 에드워드 로이드의 커피점이 해상보험으로 발전한 것을 비롯, 영국 금융의 자생적인 싹이 커피하우스에서 움텄다. 커피하우스가 문을 닫았다면 영국의 금융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만남과 자유토론을 무서워한 국가나 지도자가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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