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2기 내각이 출범 한달여 만에 휘청거리고 있다. 아베 총리가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내세운 여성 각료들이 정치자금 부정사용 등 각종 의혹으로 연달아 낙마했다. 가뜩이나 경기부진, 대외갈등, 지지율 추락으로 고전 중인 아베 총리가 자칫 지난 2007년 실각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0일 교도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오부치 유코 경제산업상과 마쓰시마 미도리 법무상이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이 관여한 후원회 등 정치단체들이 그의 지역구인 군마현에서 지지자들을 위해 공연 박람회 비용을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야권 등의 사퇴압박을 받아왔다. 마쓰시마 법무상도 자신의 선거구에서 개최됐던 한 축제 때 부채를 나눠줬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3일 장기집권을 모색하며 각교 18명 중 12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고 여심을 잡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여성 5명을 입각시켰다. 특히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2000년 뇌경색으로 사망한 부친인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당선된 후 2008년 34세의 나이로 일본 전후 최연소 입각 기록을 세우면서 미래의 여성 총리감으로 주목돼왔다. 요미우리신문은 육아와 정치활동을 병행해온 오부치 경제산업상이 아베 내각에서 강조한 여성의 사회적 활약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간판 각료'의 사임이 정권에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의 낙마와 관련해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의 부친은 총리 시절인 1998년 10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일한의원연맹 상임간사로 활동하는 등 부친의 뒤를 이어 한일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 인사로 분류됐었다.
두 각료의 낙마는 결국 인사검증 실패라 아베 총리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또 원전 재가동과 각종 법제 정비 등 현안과 밀접한 두 각료가 동시에 낙마해 국정운영에도 상당한 차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국민에게 깊이 사과하고 싶다"고 이날 밝혔다.
일각에서는 2006년 제1차 아베 정권 때 각료가 정치자금 문제로 줄줄이 사임한 악몽을 되풀이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는 1차 집권 당시에도 비슷한 악재를 만나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당시에도 일부 각료들이 정치자금 관련 의혹에 휘말리며 연이어 낙마한 것이 실각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8월 40%대(교도통신 조사 기준)로 추락했다가 개각이 호응을 얻으면서 54.9%로 반등했지만 사임한 두 각료의 추문 등이 밝혀지면서 이달 19일 조사에서는 다시 48.1%로 떨어졌다.
코너에 몰린 아베 정부는 우선 낙마한 두 여성 각료를 대체할 부분 재개각으로 위기국면의 조기 마무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경제적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되고 있는 소비세율 추가 인상을 연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19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 소비세 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내년 10월 8%에서 10%로 추가 인상하기로 했던 소비세율 인상시기를 경기상황에 따라 미룰 수 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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