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출판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국제출판협회(IPA)의 제 28차 총회가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해 4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4년마다 열리는 IPA총회는 올해 60개국 출판인 700여명이 참가해 ‘책의 길, 공존의 길(Diversity in a Shared Future)’이라는 주제아래 책을 통해 빈부격차와 종교갈등, 저작권 보호,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 간의 격차 해소 방법 등을 논의한다. 아나 마리아 카바네야스 IPA회장과 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개막식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축사에 이어 마이클 케플링거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부사무총장,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기조연설이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책은 세상을 이해하는 창(窓)이자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디딤돌”이라며 “글로벌 지식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한국은 규제 대신 진흥과 육성으로 출판정책을 바꿔갈 것이며, 유통을 개선하고 국제교류를 확대해 지식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나 마리아 카바네야스 IPA 회장은 “출판산업은 음악보다 3배가 크고 영화보다 20배가 큰 창의적인 산업이지만, 정치인들과 국가 정책 입안자들에게 과소평가돼 왔다”며 “각 나라 정부가 출판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견고한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지역별ㆍ계층별ㆍ문화별 다양성으로 인한 갈등의 공존을 인정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책”이라면서 “이번 총회를 통해 책과 문화의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령 전 장관은 ‘동과 서 두 길이 만나는 새로운 책의 탄생’을 주제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거론하며 한국의 유서깊은 출판문화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은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앞선 국가는 아니었지만, 구텐베르그보다 70년이나 앞선 금속활자를 만들면서 책의 힘을 믿었던 민족”이라며 “책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매체지만 한국민족은 권력에서 얻을 수 없었던 생명 저편의 힘을 얻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류의 문명과 엉클어진 새로운 뉴미디어의 혼란에서 길이 간직해 온 책의 아우라(고유한 성질)를 회복하지 못하면 인류 전체가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익사해 가고 있는 현대에서 출판인은 정보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에 대한 중요성도 이날 강조됐다. 케플링거 WIPO 부총장은 ‘다양성을 위한 지적재산권보호의 중요성’을 주제로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적재산권이 갖는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은 콘텐츠의 제작과 유포 방식을 바꿔놨다”며 “출판산업에도 지적재산권 보호가 관권인 만큼 관련 법규 마련과 집행에 출판인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지적했다. 1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IPA 총회에서는 출판ㆍ표현의 자유와 저작권 보호와 관련된 24개 분과별 회의가 진행돼 번역권, 출판정책, 아시아 출판의 과제와 미래, 중국 출판의 오늘, 아동출판의 경향, 불법복제 대처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된다. ■ "문학이란 대중이 간과하는 것 끄집어낼 수 있어야"
오르한 파묵 인터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소한 것을 끄집어내고 채로 걸러 글로 옮기자는 것이 문학에 대한 나의 신념입니다."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된 국제출판협회(IPA)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방한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사진)이 이날 오후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백석기)가 공동으로 마련한 문학행사 참가에 앞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작가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기보다 인간에게 정(情)으로 다가가기 위한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 안에는 세상과의 경계와 금기를 긋는 경우가 있는 데 내 소설은 정치적이라기보다 우리 안의 경계와 금기를 허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찾아온 그는 그 동안의 변화에 대해 묻자 "과거 터키 정부가 저지른 아르마니인의 대학살을 언급해 정부로부터 받는 정치적 탄압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매 가을 학기에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 강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사상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터키 정부에 화가 났으며 이에 대해 항거하고 싶었다"면서 "생각하는 것을 쓰는 것이 작가의 본분이며 사회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은 저서인 '눈' '하얀 성' '내 이름은 빨강' '이스탄불' 등이 세계 56개국에 번역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대부분 작가들이 은퇴하는 경향이 짙지만 젊은 나이에 큰 상을 받아 작품활동에 더 매진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6년 동안 써 온 장편소설 '순수박물관'을 탈고해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이날 파묵은 독자사인회와 소설가 황석영과 '경계와 조화'라는 주제로 공개 대담을 가졌으며 이어 최근 한글판으로 번역된 '이스탄불'의 공개강연회 및 낭독 회를 통해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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