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65에서 백70까지는 외길 수순이다. 흑은 10집이 넘는 실리를 얻었고 백은 상당히 두터운 외세를 마련했다. 문제는 흑에게 선수가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세돌은 흑71로 침공했다. “좀 깊이 들어간 느낌은 있지만 막상 두어지고 보니 멋진 수로군요.”(백홍석) 주변의 흑이 강하기 때문에 이 침공은 의외로 파괴력이 커보인다. 박문요는 5분을 생각하고 실전보의 백72로 받았다. 아마추어 초급자의 행마 같은 이 수가 일단 최선으로 보인다. 다른 경우라면 백은 참고도1의 백1로 행마하는 것이 프로다운 것이겠지만 지금은 무식하게 흑2로 들여다보는 수가 통렬하다. 백은 3 이하 13까지 허겁지겁 대마를 살릴 수밖에 없는데 흑이 14로 보강하고 나면 이 결말은 아무래도 백의 불만일 것이다. 백74는 유일한 탈출구인데 여기서 이세돌은 10분을 생각했다. 타이젬의 해설자 백홍석7단은 참고도2의 흑1 이하 5를 올렸다. 흑5로 들여다보는 한 방이 너무도 통쾌해 보인다는 멘트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사이버오로의 생중계를 맡은 김영삼8단도 똑같은 가상도를 소개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이 통쾌한 코스로 가지 않았다. 흑1, 3으로 미는 수순이 백을 강화시켜 주는 악수의 의미가 있으며 백이 흑5를 외면하고 A로 공격에 나설 염려도 있기 때문에 자중한 것이었다. 실전보의 흑75를 보고 김만수7단은 말했다. “이세돌이 예전의 이세돌이 아닙니다. 심모원려가 아주 돋보입니다.” 흑83은 정수. 84의 자리에 뻗고 싶지만 백에게 83의 자리를 역으로 당하는 것이 너무 아프다. /노승일·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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