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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치느님' 오신날

■ 치킨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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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야계


인간 손길 거부하던 야생 새 '적색야계'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긴 여정 추적

동남아 밀림서 나와 태평양 횡단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역사 조명

비좁은 닭장에 깃털까지 없애…

닭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만약 치킨(닭)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더 이상 '치맥(치킨+맥주)'을 저렴하게 즐길 수 없다고 상상해 보자. 생각만으로도 크게 불행해지는 사람이 비단 기자뿐일까.



닭이 우리에게 주는 게 고기와 달걀만은 아니다. 수탉의 화려한 깃털은 옷이나 모자 장식으로 이용됐고, 타고난 싸움꾼 기질은 투계라는 유흥거리를 제공한다. 뼈는 바느질 도구나 악기를 만드는 데 활용되고 닭의 볏은 인간의 관절염을 줄여주고 주름을 펴주는 효능이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하는데 매일 수십 만개의 달걀이 이용되기도 한다. 닭을 일컬어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든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깃털 달린 '맥가이버 칼'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대체 이 닭은 어디에서 비롯돼 어떻게 가축이 되어 우리 곁으로 왔을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동남아시아 밀림에 살던 야생 새 '적색야계'가 중동을 가로지르고 태평양을 횡단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해 인간의 손길 자체를 거부하는 야생 그 자체인 새가 어떻게 가금(家禽)류의 대표격이 됐는지를 과학적으로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인류의 문명을 변화시켜온 역사의 순간들을 풀어 놓는다.

닭이 세계인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비상한 적응력 때문이다. 현재 인류의 3배에 달하는 200억 마리에 이르는 닭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데, 개·돼지·고양이·암소·쥐를 다 포함해도 닭이 많다. 닭은 세계에서 단 두 곳, 바티칸 시국과 남극 대륙을 제외하곤 어디에든 있으며 미 우주항공우주국(NASA)은 닭이 화성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더불어 닭은 곡식이나 고기보다는 대나무 순이나 살아있는 벌레를 더 좋아했기에 농부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일정한 곳에 머물고 집단생활을 하는 특성도 인간이 길들이기 적합한 특성이었다. 이렇게 인류의 삶에 들어온 닭은 찰스 다윈이 진화이론을 발전시키고 루이 파스퇴르가 근대적 백신을 만드는데 기꺼이 희생했으며 오늘날 '지구의 단백질'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닭은 독특한 외관과 특성으로 여러 상징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인류학자들은 닭이 있어서 원시·고대인들이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고 보는데, 닭은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제물을 바치는 일을 가능하게 해줬다. 실제 정치·예언·탄생·결혼·죽음 등 다양한 의식에서 닭을 희생시키는 절차가 반드시 포함되곤 했다. 해가 떠오를 때 우는 특성은 닭에 종교적으로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스의 아폴론부터 페르시아의 신 미트라,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등의 태양신이 수탉과 관련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영광된 과거와 달리 닭의 현재와 예견된 미래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고대 그리스 때만 해도 영리한 동물로 평가받던 닭은 '멍청함'의 상징으로 취급되며 웃음거리가 되었다. 더 많은 살코기와 저렴한 비용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장식 대량 사육은 이미 일반화됐으며 최근에는 가공비용을 줄이기 위해 깃털 없는 닭까지 개발됐다. 이들은 비좁은 닭장에서 태어나 6주 만에 생을 마감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이 질문을 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바삭한 통닭을 위해 인류의 충실한 친구에게 무자비한 고통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 1만 9,500원.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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