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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투더퓨처2'에서 1985년에 살던 주인공 마티와 브라운 박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으로 날아간다. 30년 뒤 미래에 도착하자 도심 전광판은 시카고 컵스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영화가 개봉한 것은 1989년.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컵스 우승을 소재로 한 농담은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최근 국내에 개봉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 '마션'에도 컵스가 등장한다. 가까운 미래에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 마크(맷 데이먼 분)는 컵스의 열혈팬이다. 응원팀이 리그 꼴찌에 처져 있다는 소식을 접한 마크는 "내가 지구로 돌아갈 때까지는 우승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컵스는 월드시리즈 통산 두 차례 우승이 있는데 1907·1908년이었다. 100년이 넘었다.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은 컵스의 마지막 우승이 우리로 치면 대한제국 순종 2년이었다는 사실을 들춰내며 안타까워하거나 웃음거리 삼았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도 1945년이 마지막이었다. 바로 '염소의 저주'로 유명한 해다. 염소를 끌고 온 컵스 광팬은 홈구장 입장을 제지당하자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고 실제로 69년간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컵스의 우승은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다.
그 미래가 바로 올해일지도 모른다. 컵스는 14일(이하 한국시간) 홈구장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8강) 4차전에서 6대4로 이겼다. 1패 뒤 3연승하는 저력을 과시하며 5전3승제의 NLDS를 통과한 컵스는 18일부터 7전4승제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4강)를 치른다. 상대는 뉴욕 메츠 또는 LA 다저스다.
컵스가 NLCS에 진출하기는 2003년 이후 12년 만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올라온 터라 더 짜릿했다. 정규시즌 97승65패를 거둔 컵스는 세인트루이스(100승62패)와 피츠버그 파이리츠(98승64패)에 밀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3위에 머물렀지만 승률이 높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고 피츠버그를 4대0으로 완파했다. 다음 상대인 세인트루이스는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 팀인데다 올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른 '가을좀비'. 조용하다가도 가을만 되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세인트루이스는 2000년대 월드시리즈 우승만 두 번이다. 첫 판에서 존 래키에게 7과3분의1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꽁꽁 묶이는 바람에 0대4로 완패할 때만 해도 컵스를 둘러싼 전망은 불투명했다. 하지만 2차전을 6대3으로 잡아 균형을 맞추더니 3차전도 8대6으로 이겼다. 1~6번 타자가 홈런 한 방씩을 날리며 포스트시즌 한 경기 팀 최다 홈런 신기록(6개)까지 작성했다. 전날의 기세는 4차전까지 이어졌다. 0대2로 뒤진 2회 말 9번 타자 하비에르 바에스가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렸고 4대4 동점을 허용한 6회에는 4번 타자 앤서니 리조가 결승 솔로포를 뿜었다. 7회 나온 6번 카일 슈와버의 1점 홈런은 4강 진출을 확정하는 축포였다. 26세의 리조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중요할 때 홈런 두 방을 날렸고 22세의 슈와버는 홈런만 3개다. 컵스의 젊은 타자들은 NLDS에서 올린 20점 가운데 15점을 홈런으로 뽑아내는 괴력을 자랑했다. 마운드의 확실한 원투펀치 존 레스터(정규시즌 11승12패 평균자책점 3.34)와 제이크 애리에타(22승6패 1.77)에 두려움 없는 야수들을 보유한 컵스는 백투더퓨처의 26년 전 예언을 현실로 불러내기까지 두 계단 앞으로 다가섰다. /양준호기자 migue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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