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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긴장감이었어요."
'돌부처'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는 '골프여제' 박인비(27·KB금융그룹)도 명예의 전당 입성이 걸린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평정심을 잃을 만큼 긴장했다"고 털어놓았다.
24일 귀국한 박인비를 부산 강서구의 김해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23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최소타수상(베어트로피)을 수상, LPGA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27점)를 채웠다.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2타를 뒤지면 최소타수상에 따른 명예의 전당 포인트를 뺏길 뻔했던 박인비는 리디아 고보다 1타를 앞섰다.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 포인트를 충족하는 기록을 작성한 박인비는 내년까지 10시즌을 뛰면 아시아선수로는 박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
박인비는 "마지막 라운드 후반 홀을 돌 때가 골프 친 이후로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다. 우승을 다툴 때의 기분과는 다른, 생소한 긴장감이었다"며 "명예의 전당 포인트 마지막 1점을 두고 주위에서는 '내년에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가기는 싫었다.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부모님과의 약속도 꼭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야니(대만)도 27점까지 4점밖에 남기지 않았는데 아직 1점도 보태지 못했잖아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듯이 1점 남기고 내년 시즌을 맞기는 싫었는데 정말 최고의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전 세계랭킹 1위 청야니는 2012년 23점이었는데 지금도 4점이 모자란다.
◇박인비의 골프인생, 9홀 넘어 후반 중반으로=골프인생 전체를 18홀로 치면 박인비는 지금 몇 번 홀을 지나고 있을까. 박인비는 "전반 9홀은 넘은 것 같고 후반 중반은 오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2008년 US 여자오픈 우승 뒤 2~3년간 슬럼프도 겪은 박인비는 2012년부터 16승을 쓸어담았다. 2007년 데뷔해 9시즌을 보내며 가장 짜릿했던 대회는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라고 했다. "지금의 남편(선수 출신 남기협씨)과 스윙교정을 하면서 처음 우승한 대회예요. 그때를 시작으로 16승을 했죠." 박인비는 슬럼프 기간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메이저대회 7승으로 한국인 메이저 최다승 기록을 쓴 박인비는 메이저 3연승, 단일 메이저 3연패, 커리어 그랜드슬램(은퇴 전 4대 메이저 석권) 등의 대기록을 작성해왔다. 올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6위 상금을 보태 통산 상금 약 145억원으로 박세리의 상금도 넘어섰다. 더 이상 이룰 게 없어 보이는 박인비는 그러나 "전설적인 선수들이 정말로 많기 때문에 다음 목표를 차근차근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우 올림픽,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만들고 싶어=세계 2위인 박인비는 내년 8월 리우올림픽 출전이 확실시된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올림픽 무대를 꿈꾸지만 박인비에게는 의미가 더 크다. 유명 교습가의 지도를 받기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터라 박인비는 국가대표 경험이 많지 않다. 그는 "주니어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아 아시안게임 같은 무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올림픽처럼 큰 무대는 처음이라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기회"라며 "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것 아닌가. 출전하게 되면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 속에서 경기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서울올림픽은 제가 태어난 해 열렸어요. 리우올림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올림픽이 되면 좋겠습니다."
박인비는 "명예의 전당이라는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올림픽 얘기가 나오자 "많은 트레이닝과 준비를 할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어느 때보다 독하게 시즌을 치렀던 올해처럼 컨디션을 올림픽 기간에 맞춰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 내년에도 자신을 몰아세울 것이라는 설명. 손가락 부상도 다 나았다며 말끔한 손을 보여준 박인비는 "겨울 동안 30~40야드 샷을 집중적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완벽에 가까운 샷과 퍼트를 자랑하는 박인비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30~40야드 거리의 어프로치 샷은 "아마추어처럼 친다"고 했다. "풀스윙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실 그게 또 그렇지가 않거든요. 2온 할 수 있는 파5 홀도 두 번째 샷을 하고 나면 30~40야드가 남을지 몰라 3온으로 잘라가기도 하고…. 그래서 파5 홀 버디 성공률이 다른 선수들보다 떨어지는 것 같아요." "리디아 고는 100야드 안쪽 샷이 진짜 좋다. 그건 타고난 거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27~29일 부산 베이사이드GC에서 열리는 ING생명 챔피언스 트로피에 출전하는 박인비는 이후 가족여행으로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낼 계획이다. /부산=양준호기자 migue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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