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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Life] 제가 만든 옷, 배우 이미지-시나리오가 맞을때 진짜 멋 나오죠

영화 속 캐릭터에 '패션' 입히는 조상경 의상감독

조상경 미술감독 인터뷰3
조상경 미술감독 인터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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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전 시나리오 철저히 분석, 고증·배우와 미팅 거쳐 의상 선택

'친절한 금자씨' 땡땡이 원피스

'내부자' 이병헌의 스카잔 점퍼 등 작품 속 패션 관객들에 잇단 화제

13년간 연극·영화 참여 작품 60편… 올해도 '더킹' '리얼' 등 대작 준비

"사수 없이 혼자 시작한 분야지만 지금은 업계 선배로 책임감 생겨

후배들 목소리 낼수있게 도울 것


영화 '내부자들'의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 2014년 여름, 그는 단 한 벌의 의상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때 잘 나갔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던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가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옷을 입혀야 하나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그것을 단박에 보여줘야 하잖아요. 군용 깔깔이로 갈까, 야상 점퍼를 입힐까 고민하다가 결국 준비한 옷 다 가지고 촬영 날 아침 현장까지 갔어요." 그리고는 분장을 끝마친 배우 이병헌에게 러닝셔츠와 스카잔(자수가 놓인 일본식 항공점퍼), 정장 바지를 입혔다.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배우가 싫다고 손사래 치면 별수 없는 일.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가도 되나 걱정하며 제안한 의상이었거든요. 근데 병헌 선배가 딱 보더니 '뭐, 난 멋있으니깐' 이러면서 흔쾌히 받아주더라구요. 이래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좋아요. 뭐든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거든요(웃음)." 결과적으로 이병헌의 스카잔 패션은 대성공이었다. 화제에 오르내렸고 개그맨들에게 패러디까지 됐다. "끝까지 고민해서 풀어갔던 것들이 관객들에 제대로 어필했다는 거잖아요. 그럴 때는 정말 쾌감을 느끼죠."

화제가 된 영화 속 의상 뒤에는 언제나 그가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땡땡이 원피스와 '신세계' 정청의 독특한 보스 패션, '군도:민란의 시대' 조윤의 초록빛 도포와 '암살' 안옥윤의 눈부신 웨딩드레스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가 손을 대면 캐릭터는 한층 멋있어진다. '암살'을 함께한 최동훈 감독은 그를 일컬어 "멋과 낭만을 알기에 오버하지 않으면서 그 인물에게 가장 적절한 옷을 찾아준다"고 평하기도. 1992년 신설된 대종상 의상상을 총 세 차례, 청룡상 기술상을 한 차례 수상한 조상경 의상감독의 이야기다.

◇영화 촬영 1년 전부터 의상 작업 들어가=영화 의상팀의 역할이란 촬영 들어가기 전인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어떤 의상을 준비할 건지 결정해 제작 혹은 구입, 현장에서 그 옷을 배우에게 입히는 것까지 포함한다. 가장 중요한 때는 통상 반년, 길게는 일 년까지 걸리는 프리프로덕션 기간. 조 감독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인 그 기간 시나리오를 붙들고 늘어지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분석해야 캐릭터가 보이고 어떤 이미지로 가야 할 건지 생각이 선다."는 게 그의 설명. 다음 일은 리서치다. 각 작품이 요구하는 방식의 리서치가 있단다. 이를테면 '아가씨'를 할 때는 일본에서 기모노 선생님을 만나는 리서치를 하고 '상의원'을 할 때는 한복 장인과 전통복식 교수님들을 만났다.

"조사를 한 후에는 다시 시나리오를 보고 뭔가 모자란다 싶으면 다시 리서치를 하면서 어떻게 '톤 앤드 매너'를 잡아 진행할 건지 제작진과 조금씩 맞춰가요. 대부분 의상팀이 다 이렇게 일하지 않을까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조 감독은 그중에서도 철저한 고증과 사전 준비로 정평이 나 있다. 치밀한 사전 준비로 감독에게 직접 어떤 톤의 의상으로 가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 실제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의상은 1970년대 스타일로 앞당겼다. 그게 더 시나리오나 캐릭터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였고 결과는 호평 일색이었다. '상의원'의 이원석 감독 또한 조 감독과 상의 끝에 조선왕조 500년 중 200년의 기간을 섞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고 인터뷰했다.

어느 정도 이미지가 서면 캐스팅된 배우와 미팅을 하는데 이 부분도 조 감독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캐스팅된 배우들이 어떤 작품들을 했고 어떤 이미지로 소비됐는지를 살피며 그밖에 더 끄집어낼 수 있는 고유의 멋이 있는지를 찾아본다. 물론 배우가 생각하는 캐릭터는 어떤 모습인지 상의도 한다. "배우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시나리오상 역할이 요구하는 방식과 잘 맞을 때 멋있는 캐릭터가 탄생하는 것 아닐까요. 그럴 때 나타나는 멋이야말로 단순히 근사하다 이상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한 번 해 볼까'에서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가 되기까지=지금이야 업계 실력자로 인정받지만 감독이 영화 의상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은 오히려 우연에 가까웠다. 무대 미술과 코스튬 디자인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옷에만 유달리 관심이 깊지도 않았다. 그는 "옷에 심취했다면 그냥 옷만 다루는 디자이너가 됐을 것"이라고 반색하며 "어릴 때부터 영화와 공연을 즐겨봤고 그중에서도 누아르 장르를 좋아했는데 때마침 당시 떠오르던 신예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2)'를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한 번 해볼까'했던 것이 여기까지 왔다"고 소탈하게 말했다. 그렇게 13여년이 흐르고 연극·영화 포함해 참여한 작품 수만 60여편이다. 하나하나 다 아픈 손가락들이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지는 않을까. 조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와 정지우 감독의 '모던보이(2008)', 그리고 장훈 감독의 '고지전(2011)' 세 편을 꼽았다.

"'올드보이'는 제가 영화 일을 한 지 1년 만에 한 작업이었어요. 초짜 때. 사실 당시 저는 출산을 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그 현장의 분위기와 에너지가 너무 좋은 거예요. 영화는 정말 재밌구나, 라며 눌러앉았죠."

그러다가 '모던보이'를 만났고 처음으로 미술 감독의 역할까지 맡았다. 의상감독이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집중한다면 미술감독은 후반 작업까지 함께한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함께 하며 또 한 번 영화에 애정을 품었다. 그리고 '고지전'. 이 작품에 대해 조 감독은 "내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바꾼 작품"이라고 말했다.

"저는 원래 현장에 잘 안 가는 편인데 그때는 북한 군복 세팅을 위해 오랜만에 갔어요. 거기서 북한 사투리를 가르쳐주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제 손을 꼭 잡더니 '이제껏 많은 현장을 갔는데 북한군 옷을 제대로 만들어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또 작업에 필요한 인터뷰를 하느라 6·25 경험자들을 많이 봤는데 그런 영화판 밖의 분들을 만나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됐죠. '아, 영화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구나.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 내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이 있구나.' 이후부터는 작품 하나하나마다 공부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접근하게 되더라구요."

◇'독고다이'에서 업계의 선배로=조 감독은 분명 최근 영화판에서 가장 바쁜 의상감독 중 한 명일 것이다. 올해도 황정민·강동원 주연의 '검사외전', 박찬욱 감독의 복귀작 '아가씨', 강우석 감독의 첫 사극 '고산자-대동여지도', 송강호 주연 김지운 연출의 '밀정', 일제 기생의 이야기 '해어화' 등 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 정우성·조인성이 출연하는 '더 킹', 김수현의 영화 복귀작 '리얼', 한국형 판타지 대작 '신과 함께'의 사전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다. 처음 홀로 시작했던 일이 지금은 20여명이 넘는 스태프를 둘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전 사실 사수(선임자) 없이 혼자 시작을 한 케이스예요. 영화 의상하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도 없고 그냥 제 방식, 제 스타일대로 일을 해온 거죠. 근데 데리고 있는 식구들이 많아지니깐 이 친구들에게 책임감 같은 게 점점 생겨요. 이 아이들이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영화판에서 목소리를 좀 더 낼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의 걱정은 영화판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 스태프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스태프는 연출진이나 배우의 한마디에 온통 휘둘리곤 하니깐. 조 감독은 "나는 운이 좋아 초창기부터 날 존중해주는 좋은 감독님들과 많이 작업했고 그를 통해 실력을 쌓아 지금은 좀 편해진 단계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게 아직도 의상은 배우에 맞추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이 많다"며 "전문 인력이라는 자존감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의상 스태프의 자존심만 내세우겠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판은 기본적으로 협력이 중요시되는 곳이에요. 개인적인 성향이고 자기 자존심 세우려면 개인 아티스트가 돼야죠. 저도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영화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즐길 수 있어야지 좋은 의상도 좋은 영화도 나오지 않을까요. "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She is…

△1974년 서울 △199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 입학 ◇참여 영화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 △2003년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올드보이 △2004년 범죄의 재구성, 얼굴 없는 미녀, 쓰리, 몬스터 △2005년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미스터 주부퀴즈왕, 소년, 천국에 가다 △2006년 짝패, 괴물, 구미호 가족, 타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미녀는 괴로워 △2007년 헨젤과 그레텔, 프랑스 중위의 여자, 아버지와 마리와 나 △2008년 스페어, 모던 보이(미술·의상) △2009년 그림자 살인, 박쥐 △2010년 이끼, 심야의 FM, 초능력자, 까페 느와르(미술) △2011년 글러브, 파란만장, 만추, 고지전 △2012년 후궁:제왕의 첩, 미쓰GO, 26년 △2013년 박수건달, 신세계, 감시자들 △2014년 군도:민란의 시대, 나의 독재자, 봄, 상의원 △2015년 꿈보다 해몽(미술·의상), 암살, 베테랑, 협녀, 칼의 기억, 내부자들, 대호, 조선마술사 ◇수상 △2007년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의상상(타짜) △2007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기술 부문 △2008년 제28회 영평상 영화제 기술상 △2014년 제51회 대종상 영화제 의상상(군도:민란의 시대) △2015년 제52회 대종상영화제 의상상(상의원) △2015년 제36회 청룡영화상 기술상(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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