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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법당국 손놓고 있는 사이 길잃은 참여재판

피고인들 직접 신청 꺼리고 법원도 툭하면 배제 결정

국회·당국선 제도정착 손놔

작년 실시 건수 200건 밑돌듯

배심원 평결 구속력 부여… 재판 대상 대폭 확대 필요

국회·사법당국 손놓고 있는 사이 길잃은 참여재판

실시 건수 2년 새 반토막 … “배심원 평결 구속력 부여 등 개선 시급”

국민참여재판이 당초 기대와 달리 외면받고 있다.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해 ‘일반인의 상식에 맞는 판결’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도입 취지와 달리 2년새 실시 건수가 반토막 나는 등 급감추세다.

18일 대법원등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국민참여재판 건수는 10월 말 기준 170건으로 2013년(345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2월 기준으로 해도 200건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2008년 시작된 국민참여재판은 2009년 95건, 2011년 253건, 2013년 345건으로 매년 늘어나다가 2014년 271건으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감소세가 더 커 시행 초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참여재판을 신청한 건수도 2013년 764건, 2014년 608건, 지난해 10월까지 389건으로 급감세다. 참여재판에 대한 선호도가 그만큼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치들은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배심제 국가인 미국은 연간 배심 재판(참여재판)이 10만 건을 훌쩍 넘는다. 우리보다 1년 늦게 참여재판을 시작한 일본도 2012년 1,500건, 2013년 1,387건, 2014년 1,202건 등 매년 1,000건 이상이 실시되고 있다.

국내서 참여재판 실시 건수가 늘기는 커녕 오히려 줄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참여재판을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은 범죄의 형량이 ‘1년 이상 징역 또는 금고’ 이상인 모든 피의자들이지만 현행법상 피고인이 직접 신청을 해야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참여재판을 하면 제3자(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얼굴과 범행이 공개되고 배심원들이 감정에 휩쓸려 높은 형량이 나올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참여재판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참여재판 대상 사건 중 피고인의 신청이 이뤄진 비율은 전체 4~5%에 불과하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변호사와 피고인 사이에 ‘참여재판이 일반재판에 비해 유리할 게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면서 참여재판 신청 건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 참여재판은 변호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의식해야 하는 만큼 일반 재판에 비해 사전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하는 부담도 작용해 배심재판을 의무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변호사들의 선호도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은 법정형이 6개월 이상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는 기본적으로 배심 재판을 원칙으로 한다. 피고인에게 배심재판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을 주지만 법원이나 검찰이 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대로 배심재판으로 진행될 정도로 강제적이다. 일본과 독일, 프랑스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중범죄는 피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참여재판을 실시하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참여재판 실시 여부가 전적으로 피고인의 선택에 달려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사실상 전무하다.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신청해도 법원은 일정 요건에 해당하면 이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참여재판 활성화의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특히 법원이 툭하면 ‘기타요건(그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 규정에 따라 손쉽게 배제 결정을 내리고 있어 참여재판을 뿌리내리기 어렵게 만든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기타 요건’에 따라 참여재판 배제가 이뤄진 경우는 전체 배제 사례의 74.0%에 이르렀다. 기타 요건을 적용한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 피고인의 태도가 불량한 경우’, ‘ 범죄 잔인성 등 사건의 성격상 적절하지 않음’ 등 자의적이고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추진단장으로 참여재판 도입에 기여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기타 요건을 없애거나 무분별한 배제를 막는 장치를 두는 등의 제도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심원들의 판결(평결)을 판사가 의무적으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규정도 문제다. 배심원들이 심사숙고해 내린 결론이 법관에 의해 번복되는 경우가 많아지면 시민들로서는 재판에 적극 참여할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로 참여재판 실시 건수는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지만 제도개선에 앞장서야 할 국회와 법원, 검찰, 변호사 모두가 손 놓고 있어 해결을 요원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법당국도 이런 문제들을 인식해 2013년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민사법참여위원회’를 꾸려 참여재판 개선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엔 △피고인의 신청이 없어도 법원 직권 또는 검사의 신청으로도 참여재판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 △판사는 원칙적으로 배심원 평결을 따르도록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법무부는 위원회 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참여재판을 외려 위축시킬 수 있는 규정을 넣어 2014년 입법발의 했다. 법무부 개정안은 참여재판으로 진행하면 불공평한 판단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검사가 신청하는 경우 등에 참여재판을 배제할 수 있도록 배제 규정을 넓힌 조항을 추가했다. 그마저도 2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법원, 검찰 등도 이후 아무런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여재판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전관예우 우려 해소 등을 실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임에도 국회와 법원, 검찰, 변호사 모두의 무관심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참여재판 대상을 확대하고 배심원 평결에 실질적인 구속력을 부여하는 등 전면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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