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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 오늘] 日후쿠오카 법원, “고이즈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위헌”

2004년 4월 7일, "총리로서 참배는 ‘정교분리’ 위배"

2004년 오늘,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의 신사참배가 위헌이라는 일본 후쿠오카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은 야스쿠니신사 전경. /출처=구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 공약으로 매년 신사 참배를 하겠다고 내걸었으며 2003년과 2004년 1월 연속으로 참배했다. 재일 한국인과 규슈, 야마구치 시민 등 211명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로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며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2004년 4월 7일, 가메가와 기요나가 일본 후쿠오카 지방 법원 재판장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종교법인인 야스쿠니에서 ‘내각 총리 대신’ 자격으로 행한 종교적 활동”이라며 “국가의 종교적 활동을 금지한 헌법 20조 3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고 내린 첫 위헌 판결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 중심가인 지요다 구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전역의 신사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신사 중의 신사로 불린다. 본디 신사란 일본 황실의 조상, 고유의 신앙 대상인 신,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모신 사당을 말한다. 야스쿠니 신사가 만들어진 1869년은 메이지유신 직후였다. 당시 신사의 명칭은 도쿄 쇼콘샤(招魂社), 일 전역에 있는 쇼콘샤 중 황실이 참배하는 곳이었다. 이후 쇼콘샤는 일본의 대외침략과 맞물려 군사적 성격을 띠게 됐다.



도쿄 쇼콘샤는 세이난[西南]전쟁 2년 뒤인 1879년에 ‘야스쿠니’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 평온한 나라’라는 의미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이 이곳으로 모셔졌다. 천황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이유로 246만 여 명은 신이 됐다. 야스쿠니신사에서는 제사를 매일 지내며, 봄과 가을마다 위령제를 실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건국일(2월11일) 등에도 수시로 행사를 연다. 우리나라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는 이 곳이 성지순례 장소가 된다.

급기야 1978년에는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는 일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은 국제군사재판을 열어 독일과 일본 전쟁범죄자를 A, B, C급으로 분류했다. A급 전범은 국제조약을 위반해 침략전쟁을 기획, 시작, 수행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죄목은 ‘평화에 대한 죄’다. A급 전범 합사 이후 총리와 각료의 신사 참배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으로 총리 자격으로 공식 참배를 한 사람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였다. 하지만 총리의 신사 참배는 고이즈미 총리의 위헌 판결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3년 12월 26일 일본의 총리인 아베 신조가 신사를 참배하여 또 다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논란을 의식, 이 때는 공적 참배가 아닌 ‘사적 참배’임을 강조했다. /김진희인턴기자 jh694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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