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이 덮치는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남 곡성 공무원 양모(38) 주무관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양씨는 지난달 29일 곡성 세계장미축제 보도자료를 만들고 군 소식지를 발간하느라 야근을 한 뒤 만삭의 아내와 6세 된 아들과 함께 늦은 귀갓길에 올랐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날 양씨는 근무지 곡성에서 광주로 가는 막차를 타고 왔으며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광주 광역시 북구 오치동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 내려 마중 온 만삭의 아내 서모(36)씨와 아들을 만났다.
남편 양씨가 앞장서고 아내 서씨와 자전거를 탄 아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목격자들은 “양씨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들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순간 아파트 20층에서 뛰어내린 유씨(25)가 양씨와 충돌했다”고 증언했다. 6살짜리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불과 2m 앞에서 사고를 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해야 했다.
◇ 아내의 고향 곡성 알리기에 앞장섰던 성실한 공무원
양씨는 고려대학교 유전공학과 출신으로 제약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2008년 9월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양씨는 2011년 아내 서씨의 고향인 곡성군청으로 근무지를 옮겼으며 2014년 7월부터 지금의 홍보팀에서 일해 왔다. 그는 곡성 군청 홍보담당 공무원으로 곡성을 알리는 데 집중해왔으며 지난해 말에는 홍보 유공을 인정받아 전남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 양씨는 ‘영화 ’곡성‘을 이용해 전남 곡성을 알리자’는 역발상을 제안하며 곡성 군수와 함께 곡성 알리기에 그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동료들은 “곡성에서 찍은 영화 ‘곡성’이 대박을 치면서 양씨는 더욱 바빠져 그의 등에는 소금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5월 하순 인구 3만여 명의 곡성에 그 8배에 달하는 23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인 곡성 세계장미축제는 양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업무였다. 실제 양씨는 사고 당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장미축제를 비롯, 곡성 관련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빈소를 찾은 유근기 곡성군수는 “고인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재였다”며 “최근 장미축제를 치르면서 매일 야근을 했다”고 애도했다.
양 주무관의 사고 소식을 듣고 자택에서 대성통곡했다는 유근기 곡성군수는 정례조례와 직원 교육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을 ‘곡성군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장모씨는 “양 주사님 청천벽력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모를 탓해야 할지 세상을 나무라야 할지 이것 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부조금 50만원을 전달했다.
그는 “청사 청소를 하며 언론기사 분석 등을 위해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양 주무관을 매일 봤다. 참으로 성실한 청년”이라고 기억했다. 홍보업무를 함께 한 인연인 곡성 경찰서 여경도 빈소를 찾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양 주무관의 초임 근무지인 경기도의 한 기초지자체 공무원도 곡성군청 홈페이지에 “성실한 친구였는데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는데…”라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양 주무관들의 동료인 600여명 곡성군 공직자도 모두 한달음에 달려와 양 주무관의 길을 배웅하고 있다. 양 주무관의 안타까운 사연을 언론을 통해 접한 시민들의 유족을 돕고 싶다는 문의 전화도 곡성군에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자살 공시생 유가족, 공무원 유가족 찾아와 사과
지난 2일 곡성군에 따르면 아파트 20층에서 뛰어내려 양 주무관을 덮쳐 숨지기 한 공시생의 아버지와 친형이 빈소를 찾아 숨진 공무원 유가족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빈소 옆 가족 공간에서 양 주무관의 가족을 만나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떨군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억누르고 다시 유가족을 마주하는 공시생의 가족과 날벼락 같은 사고로 한 집안의 가장을 잃은 공무원 가족의 불편한 만남이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양 주무관의 유가족은 오는 3일 장례를 마친 후 공시생 가족을 정식으로 만나 공식적인 사과를 받을 예정이다.
곡성군 관계자는 양 주무관의 유족이 “공시생의 가족도 어렵게 사는 것으로 안다”며 “그들도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겠느냐, 보상은 바라지도 않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구조금 받을 수 있을 듯
공직 10년을 채우지 못해 연금 수급대상자가 되지 못한 양 씨의 남은 가족을 도우려는 주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곡성군은 양 주무관이 ‘순직’ 처리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공식 밝혔다.
양 주무관은 공무원연금법상 근무연수가 10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하지 못해 연금수급대상이 아니지만, 곡성군 측은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14조에는 ‘출퇴근 중의 사고로 인한 사망의 경우 공무상 사망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어 순직처리에 따른 유족급여 신청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불의의 사고로 이어진 사건을 맡은 경찰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른 구조금액을 가족들이 받을 수 있도록 사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다만 ‘과실에 의한 행위’는 구조대상 범죄피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 조항 탓에 신중한 법률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찰은 2012년 10월 20일 오후 9시 7분쯤 경북 고령군 다산면의 한 아파트에서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피해 유가족이 범죄피해 구조금을 받은 사례를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30대 여성의 투신으로 아파트 현관을 지나던 중국 동포 산업연수생이 사망한 내용으로 이번 사건 내용과 유사점이 있다.
당시 경찰은 투신자살자에 대해 ‘과실치사’로 사건을 송치했으나 범죄 가해자가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검찰청 범죄피해구조심의회에서 구조금 지급을 결정하면서 유가족을 돕게 됐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이번 사건의 경우 역시 검찰에 송치되더라도 당사자가 숨져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지만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른 구조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현정 인턴기자 hyunjeong101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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