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은 1396년에 한양 도성과 함께 지어진 조선의 유물이다. 국보의 지정번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에 기반한 것으로 지정된 ‘순서’와 관련 있을 뿐 역사적 가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국보는 무엇일까? 바로 국보 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암각화란 바위에 새긴 바위그림인데, ‘반구대 암각화’는 한국의 국보 가운데 유일한 석기시대의 유산이며 그 제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국보다. 아직도 반구대 암각화의 정확한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이르게 잡으면 약 7,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제작이 시작돼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새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시대 사람의 얼굴모습부터 배를 타고 고래를 잡으러 나선 모습, 무당과 성기가 부각된 그림 등이 있으며 많은 수의 고래와 호랑이·사슴·멧돼지·물개·바다거북 등 다채로운 짐승이 등장한다.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음에도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되기 전인 1965년 인근에 댐이 조성돼 ‘국보’가 매년 장마철에 물에 잠겼다 다시 햇빛에 마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가변형 이동식 물막이 시설인 ‘키네틱 댐’ 건설을 추진하다가 실효없는 임시방편이면서 경관까지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아 중단했다. 이를 추진하던 변영섭 당시 문화재청장은 여론의 질타를 맞았고 결국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으로 취임 8개월 만에 경질됐다.
제1호 숭례문부터 319호 동의보감까지 총 328건의 국보 전체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문화재 분야를 취재해 온 일간지 선임기자로 “역사가 숲이라면 국보는 나무”라며 “다채로운 문화유산과 그 문화재를 상징하는 국보로 인해 역사는 길고 넓고 또 깊어진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이 책은 지정번호와 상관없이 한국사 흐름에 맞춰 국보를 시대순으로 재배열한 점이 특징이다. 역사를 따라 사진까지 곁들여 국보를 만나니 금상첨화다.
우리 민족이 청동기를 자체 제작했음을 보여주는 국보 231호 ‘전 영암 거푸집 일괄’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반박하는 고고학적 증거이며, 광배가 붙었던 자리만 있을 뿐 정작 광배는 북한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11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이산가족 못지않은 분단의 아픔을 상징한다. 백제의 무왕인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 설화의 진실을 말해주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의 유물 9,000여 점,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를 간직한 신라의 금관, 고려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청자 등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들을 읽는 재미가 탁월하다. 2만7,8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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