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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씨의 #오늘도_출근] '퇴사'하고 ㅇㅇ이나 해볼까? 하는 당신에게

/글·그림=이말년




#. ‘아, 정말 못 해먹겠다’

오늘은 정말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사내 인트라넷에 들어가 파일을 뒤적인다.

찾았다, 사직서.

누가 볼 새라 황급히 출력 버튼을 한 장 누르고 프린터기 앞으로 달려 간다.

조금 전의 패기는 온데 간데 없다.

‘그래, 나갈 때 나가더라도 동네방네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표를 던지는 (특히 고문관 역할을 자처한 상사의 면전에 대고) 짜릿한 꿈을 꿔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대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여기거나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때 ‘이탈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다니나, 자괴감이 든다’고 자각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직서를 찾고 있다는 것이죠.

임금으로 보상받는 노동은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저절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주말에 몰아서 잠을 잔다고 짬을 내 친구들을 만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을 쪼개 만난 친구 중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혹은 빛나 보이는’ 그러니까 갓 스무 살 같은 열정이 가득 해 보이는 친구라도 있다면 일종의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회사를 다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는 겁니다.

질문의 횟수가 많아지면 회사생활은 더 재미없어지고 심드렁해지기 시작합니다.

개미지옥 같은 이 회사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세상은 재미있는 일로 가득 찬 놀이동산일 거란 착각 또는 환상에 사로잡히면, ‘뭐라도 좋다, ㅇㅇ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가슴 한 켠에 자라기 시작합니다. ‘회사가 싫어서’라는 뿌리에서 갖가지 모양의 열매가 영글기 시작합니다.

/MBC캡쳐


‘하, 그만 두고 몇 달간 해외 봉사나 가볼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매일 커피 마시는 직장인이 한 둘 이겠어? 회사 근처에 카페나 차려볼까?’



삶의 의미, 보람, 말로 다 하기 힘든 무형의 가치가 있는 봉사.

그러나 몸은 분명 고되고 그래서 사명감이나 의지 없이는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입니다.

몇 달간 오지에서 체류해야 하는 해외봉사라면 더더욱 그렇죠.

언론을 통해 본 그들의 이야기는(해외봉사자) 아름답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들은 그런 생활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더 큰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커피 향이 은은한 카페, 인테리어가 예쁜 레스토랑은 어떤가요.

퇴직 후 무턱대고 창업하는 치킨집과는 다르다고 항변할지 몰라도 자영업자의 고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식자재 관리부터 매장 관리, 직원 관리, 손님 관리까지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시작하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는 걸 하루하루 온몸으로 느끼는 게 자영업이죠.

회사만 빼고 뭐라도 괜찮다는 건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했다는 뜻일지 모릅니다.

그건 도전이나 용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회사 창 너머의 풍경들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그럴 리 없겠지만 행여나 사직서로 회사나 상사에게 복수하겠다는 귀여운(?) 꿈은 꾸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나간다고 하면 정말 깜짝 놀라겠지?’했다가는 초고속 퇴사 승인에 정말 깜짝 놀라시게 될 거라 장담합니다.

개인에겐 엄청난 결심이고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회사로서는 별일이 아니라는 슬픈 사실만 확인하게 될 테니까요.

못 믿으시겠다면 재직 중인 회사의 사직서 양식을 확인해 보세요.

사유를 쓰는 공란을 다 채울 필요는 없지만, 인수인계 할 업무 리스트와 회사에서 지급했던 비품은 빠짐없이 채워넣어야 한다는 사실에 한번 그리고 회사는 나 없이도 ‘별 탈 없이’ 돌아간다는 진리를 깨달은 순간 다시 한번 놀라게 되실 겁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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