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앞서 언급한 형태적인 측면 뿐 아니라, 현재의 아이돌 그룹들은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정체성 면에서도 ‘누구와는 다르게’, ‘누구보다 더 특별하게’라는 논제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일일이 이름을 다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그룹 틈에서 자생력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아이돌 그룹들은 단순한 비주얼이나 음악적인 효과에 집중해 승부수를 띄웠다. 점차 아이돌 음악을 소비하는 세대층이 높아지고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수준 역시 상향평준화 되면서 음악을 구성하는 유기적인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실제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되던 1세대 아이돌은 ‘전사의 후예’와 ‘학원별곡’ 등처럼 아이돌 음악을 향유하는 특정 계층의 상황을 대변하며 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돌=립싱크’라는 인식 속에서 풀어야할 숙제는 별개로 말이다 .
이후 등장한 god, 동방신기 등 특히 보컬적인 측면에서 실력을 보강한 2세대 아이돌은 비교적 가요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던 활동 반경의 범위를 넓혔다. 동시에 해외 시장 진출의 반경을 보다 확장시켰고, 이를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아이돌 수가 증가하게 된다.
타 그룹과의 변별력을 갖지 못하면 도태되는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3세대 이후 아이돌은 대중성과 독창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형국이 됐고, 이 시기와 맞물리며 자구책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2013년에 데뷔한 방탄소년단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등 스토리텔링과 결합한 연작 앨범을 선보였던 방탄소년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청춘’이라는 주제를 통해 공감을 얻어냄과 동시에,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전 앨범과의 연관성이나 상징들을 찾아보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며 그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에 팬들을 적극 개입시켰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기점으로 아이돌 그룹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연작시리즈 경향은 더욱 가속화됐다. 각 팀들은 저마다 설정해 놓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콘셉트, 안무, 비주얼 등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구성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계에서 스토리텔링을 차용한 것이 아예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면서도 “얼마 전부터 문화 전반에 걸쳐 콘텐츠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각 콘텐츠가 가지는 진정성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듯한 친밀감을 형성한다”며 “음악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콘텐츠의 콘셉트 자체가 하나의 큰 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뷔 당시부터 스토리텔링을 전면에 내세운 걸그룹 드림캐쳐 측 역시 “현 시점의 음반시장은 소비자로 하여금 직접 수수께끼를 풀고 해답을 찾게 함으로써 호기심과 가수들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며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과 콘셉트를 구축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해야 대중들에게 각인되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각 그룹만이 가진 ‘스토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정규 앨범이 중요시되던 경향에서 점차 미니앨범이나 디지털 싱글 발매로 변모하며 일회성 소비 경향이 짙어진 가요계 흐름 역시 이러한 변화를 부추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앨범 한 장에 모든 것을 다 녹여내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이전과는 달리 소비의 중심이 곡 단위로 바뀐 것.
이에 따라 곡 발표 주기도 덩달아 빨라진 만큼, 많은 가수들이 이전에 발표한 앨범의 잔상이 채 사라지기 전에 이와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음원을 발표해, 보다 쉽게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새로운 콘셉트로 인한 이질감은 최소화하면서도 해당 앨범에 보다 더 긴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소재로 활용되는 만큼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영향력은 꽤 크다고 볼 수 있다.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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