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중세 미술을 흔히 ‘암흑기’로 알고 있지만 실상 중세는 번영의 시기였고 이를 표현하려는 열망은 뜨거웠다. 유럽 여행에서 도시마다 빠지지 않는 중세의 성당 건축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최첨단 시설이자 지상에서 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미술을 통해 더욱 빛났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가 쓴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의 3·4권이 최근 출간됐다. 지난해 5월 나온 1·2권이 원시시대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미술을 다룬 데 이어 3권은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4권은 중세 문명과 미술을 각각 담았다. 서기 300년부터 1300년에 이르는 1,000년의 시간을 예술작품으로 만나는 셈이다.
왜 중세미술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아직도 중세인의 DNA가 서양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유럽은 1000년 전만 해도 인구 1만 명 도시조차 없는 시베리아 벌판 같은 곳이었는데 어떻게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는지 미술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중세 기독교인들이 속죄와 참회를 위해 나선 순례길은 유럽 각 지역에 마을을 만들었고, 이곳에 세워진 성당들은 종교와 공동체가 어떻게 예술을 통해 엮이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고딕 성당들이 벌였던 높이의 경쟁이 ‘마천루의 저주’가 됐다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저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립 후 대공황이, 부르즈 할리파 건축 이후 금융위기가 왔듯이 중세에도 112m의 아미앙 성당이 1270년에 지어진 뒤 금융 붕괴, 대기근, 흑사병이 닥친 ‘초고층 건물의 저주’가 있었다”면서 “중세의 끝은 이런 거품의 끝이었고 그후 르네상스가 태동했다”고 설명했다.
책은 얼핏 비슷해 보이는 유럽 성당들의 특징과 미술 장식들의 미묘한 차이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1990년대 출판가를 강타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본격 ‘마이카시대’를 맞아 국내 여행 증가와 상생했듯 이번 ‘난처한 미술이야기’ 3·4권은 유럽 여행의 안내서로 든든하다.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에서 언스트 곰브리치에게 수학한 저자는 대중을 겨냥한 미술 교양서를 목표로 책을 썼고, 서양미술사로는 곰브리치의 저서 ‘서양미술사’ 이후 처음으로 인문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2권은 총 5만 권이 팔려 17쇄를 찍었고 국내 출판사 대표들의 모임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대상도 받았다. 3권 1만7,000원·4권 1만9,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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