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노래 불러 볼까요? 여러분, 저와 함께 노래 불러 봅시다. 동방의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지난달 28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 연설회가 열린 경산실내체육관.
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류여해(사진) 한국당 수석대변인이 연설 도중 난데없이 손에 태극기를 쥐고 제창(齊唱)을 제안했다. 전에 보기 힘든 파격이었지만 체육관을 가득 메운 당원들은 놀라는 기색 없이 함께 노래 부르며 흥을 돋웠다. 며칠 앞서 열린 다른 지역 합동 연설회에서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무대를 휘저은 류 대변인이 또 어떤 쇼맨십을 준비해왔을지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찰나였다.
현역 의원도 아니고 일반인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류 대변인은 쟁쟁한 ‘금배지’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득표율도 3선의 이철우 의원에 이은 2위였다. 류 최고위원에게 홍준표 대표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류 최고위원은 이력도 독특하다.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대학 교수, 대법원 재판연구관, 국회사무처 법제관 등의 이력을 쌓은 뒤 지난 1월 인명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권유로 당 윤리위원을 맡게 됐다. 정치에서 새 인생의 좌표를 찾기라도 한 듯 류 최고위원은 3월에 입당 원서를 쓰고 4개월 만에 지도부에 입성했다.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적반하장’의 스튜디오가 마련된 여의도 당사에서 7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류 최고위원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잘못하면 당도 끝이라는 부담감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최고위원에 당선된 그날 하루만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부터는 무너진 보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정치 신인인 류 최고위원이 전당대회에서 파란을 몰고 온 배경에는 그가 내세운 ‘이념적 선명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올해 5월 펴낸 저서 ‘왜 지금 비선실세를 말하는가’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을 보면서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보수우파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이 나라를 지킬 거예요. 절대 좌빨(좌파 빨갱이)한테 나라를 뺏기지 않을 거예요”라는 육성이 담긴 동영상 클립을 올렸다.
경선 기간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태극기 교주’를 자처하는 이념적 지향의 소산인 셈이다. 본인이 썩 반기는 별명은 아니지만 한편에서는 그를 ‘여자 홍준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당이 ‘노른자 지역구’인 서울 서초갑의 당협위원장에 그를 앉힌 것 역시 류 최고위원이 가진 화제성을 높이 평가한 덕분이다.
새 지도부의 압도적인 선명성이 오히려 한국당의 앞날에 그늘을 드리우는 악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보수 유권자도 적지 않다. 민심을 거스르는 우경화는 외연 확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보수의 여걸로 거듭날지, 당을 말라죽게 하는 바이러스가 될지 지켜볼 일”이라는 이상휘 세명대 교수의 진단은 류 최고위원을 바라보는 지지층의 기대와 불안을 명쾌하게 요약한다.
이 같은 일각의 의구심을 전하자 류 최고위원은 기다렸다는 듯 반박했다. 그는 “배가 침몰할 판인데 확장은 무슨 확장이냐. 집안부터 단속하는 게 우선”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똘똘 뭉쳐 역량을 과시하면 국민들의 지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며 “지금은 남의 집 김치에 젓갈을 쓰는지, 소금을 넣는지 신경 쓸 때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나는 조직도 계파도 없이 최고위원에 뽑혔다. 기득권 타파를 원하는 당심(黨心)을 받들어 한국당의 부활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나윤석·김현상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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