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수저 계급론’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제력이 자식의 모든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젊은이들의 언어로 표현되며 쓰디쓴 화두를 던진 것. 책은 미국판 ‘흙수저’라고 할 수 있는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레시(백인 쓰레기)’ 출신의 저자 J. D. 밴스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 즉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까지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그렇다고 책이 단순한 ‘흙수저의 성공기’는 아니다. 미국 사회를 통해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계급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보편성을 지닌다.
밴스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속하는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 출신이다. 그의 어머니는 약물 중독에 빠졌고, 아버지는 일찍이 양육권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를 키웠는데, 그의 조부모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이다. 러스트벨트의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가정의 가풍은 ‘가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조상은 대게 남부의 노예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해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 밴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로 이것 역시 밴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장점인 의리와 끈끈한 가족애는 밴스가 부모님의 지원이 아닌 조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밴스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겪은 것과 유사한 형식의 개입이 있었다. 나는 더럽게 운이 좋은 ‘개자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밴스는 ‘힐빌리’의 가난을 ‘학습된 무기력’에서 찾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생에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 부족을 무능력으로 착각해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는 해병대 입대가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며 마법처럼 ‘힐빌리’의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공공정책이나 획기적인 정부 프로그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1만4,8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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