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밥 차려줘라” “여자애가 예뻐야지” “뚱뚱한 여자는 밤길 걱정 없어.”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성차별 발언에 여성들이 발끈했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을 가정의 수호신이자 예쁜 외모에 상냥하고 애교로 똘똘 뭉친 대상으로 강요하자 ‘성토대회’를 연 셈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여성 1,2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성차별 사례 4,563건을 28일 공개했다. 응답자들은 ‘가족관계(23%)’와 ‘운전 및 대중교통 이용(15%)’ ‘학교생활(14%)’ ‘일터(13%)’에서 성차별을 느꼈다고 답했다.
가족 관계 속 성차별은 모든 성차별 사례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주로 가사노동 강요와 통금 규제, 빈번한 외모 평가가 이유였다. 응답자들은 “오빠 밥 차려줘라” “왜 여자애가 애교가 없니” “너는 외모가 별로이니 공부라도 열심히 해”와 같은 일상 속 차별 발언에 시달렸다고 답했다. 일부 여성은 “남동생이 있으니까 누나들이 대접받는 거다”라는 얘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20·30대 여성들이 반말과 외모 평가를 겪었다는 증언도 다수 공개됐다. “미인을 태워 영광” “예쁜 아가씨 가시는 길 모셔다 드려야죠”는 여성들이 한 번씩은 다 들어봤을 만큼 흔한 택시기사의 멘트다. 운전 못하는 운전자를 흔히 중년여성을 빗대 ‘김여사’라고 부른다는 점도 성차별 사례로 꼽혔다. 은행이나 부동산중개업소를 방문했다가 “남편분은 어디 계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증언도 있었다. 임신 중이던 한 응답자는 부동산에 가서 꼼꼼히 조건을 따져 물었더니 “임신해서 예민하시네요”나 “남편분 허락 받으셨어요”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고 밝혔다.
직장에서도 여성직원은 ‘여자’의 명함을 떼기 어려웠다. 자신을 여성 프로그래머라고 밝힌 한 응답자는 “면접을 볼 때 ‘애가 몇 살이냐’ ‘야근할 수 있냐’며 남자에게는 물어보지 않은 질문을 구직 단계에서부터 자주 받았다”고 토로했다. 판촉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한 응답자는 “활동이 많은 아르바이트인데도 굉장히 짧고 불편한 치마를 입으라고 요구했다”고 고백했다.
민우회는 이날 △‘딸’ 역할 강요 않기 △외모 꾸미기 강요 않기 △통금 규제 없애기 △‘여자’ 아닌 동료로 대해주기 등을 제안했다. 민우회 관계자는 “현재의 차별을 확인하는 것은 개인들의 일상 속 경험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며 “주어진 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저항의식과 해학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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