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내년도 지진 관련 예산으로 5,029억원을 편성했지만 실제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내 예산 심의 과정에서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이 상당수 깎여나간 사례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에 따라 포항 지진 이후 진행되는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증액 여부가 논의될지 주목된다.
◇민간 건축물 내진보강 비용만 2조원가량 필요=일단 포항 지진 사태에서 필로티 구조 건축물 등 민간 소유 건축물의 취약성이 드러났지만 정부 예산안에는 관련 대책이 반영되지 않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민간 건축물의 내진보강률을 오는 2022년까지 40.1%로 높이기 위해 정부가 공사비의 50%를 보조해줄 경우 5년간 9조1,526억원(9만6,140개동 공사)이 소요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내년 지진 예산 전체액의 3배가 넘는 금액인 연평균 1조8,305억원의 정부 재정이 소요되는 셈이다.
학교건물의 내진보강을 위해 교육부가 책정한 500억원도 전체 학교 공사에 소요되는 액수를 충당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서울 내 학교 건물의 내진 비율은 26.6%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비율인 세종(68.9%)을 제외하고 대부분 10~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해일 대피시설 설치 등을 위한 재정 역시 5년간 27억9,000만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대피안내와 대피장소, 대피로를 마련하는 비용으로 연평균 5억5,800만원에 이른다.
◇경주 지진 겪고도 지진 예산 대폭 칼질=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의 지진 관련 예산도 오히려 줄거나 증가 폭이 미미한 경우가 많다.
우선 기상청의 지진 관련 내년 예산은 올해 대비 12.3%(25억원) 줄어든 177억6,600만원이다. 특히 지진 조기경보시스템 고도화, 지진정보전파체계 강화 예산은 올해보다 각각 51.6%, 55.9%나 감소했다. 경제성보다 안전에 방점을 두고 예산을 편성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포항 지진이 터지자 예산소위원회를 열고 지진조기경보 구축 예산 등에 대한 증액을 다시 논의했다.
낙후 건물의 지진 피해 심각성과는 달리 국토교통부가 요청한 노후 공공임대주택 시설의 개·보수 사업 예산 530억원은 전액 삭감됐다. 이에 자유한국당 예산안조정소위는 지난 14일 예산 심사에 앞서 당의 ‘증액’ 부분으로 ‘노후공공임대주택 시설 개보수사업예산 정상화’를 넣어 서민 주거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광림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수요가 여전히 있고 필요성이 큰 예산임에도 전액 삭감됐다는 것은 분명 문제”라며 “이번 예산 심사에서 분명히 필요성을 재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 안전 예산도 미반영 수두룩=지진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예산 반영이 미비한 사례도 있다. 경주 지진 이후 발생하고 있는 여진을 유발하는 원인단층에 대한 정밀조사 예산은 원안위의 요구보다 10억원 가까이 줄어든 24억2,700만원만 편성됐다.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다수기 및 지진에 관한 것”이라며 “원전 안전성에 대한 주민 및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행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역시 증액을 요구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진 등에 대비한 안전관리 대책 예산이 그 중요도에 비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며 “안전 예산이 부족해 재해 대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역부족이고 이 때문에 땜질식 처방만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정부는 포항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것을 검토하는 한편 특별교부금 4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중소기업·소상공인·전통시장에 긴급경영안전자금과 보증특례 등 총 1,750억원을 지원한다. /권경원·송주희·류호기자 na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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