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물물교환 경제사회에서 가치 환산에 따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출현했다. 최초의 화폐는 조개껍데기·주옥 등의 자연화폐였는데 국가가 건설되고 물물교환 범위가 확대되면서 표준화된 가치를 위해 금·구리 등으로 주조된 금속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지폐·어음·수표 등의 신용화폐가 도입되고 이후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가상화폐 시대가 열렸다.
신용 화폐의 최강자는 달러이다. 전 세계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을 달러로 환산하면 4조달러인데 이 중 90%를 차지한다. 이런 달러가 발행되고 관리되는 곳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다. 연준은 국가 소유 은행이 아닌 민간은행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연준에 이자를 지불하고 달러를 빌려와 화폐를 조달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달러의 발행권이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에 있다는 점이 의아하지 않은가.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지난 2009년 1월 배포되기 시작했다. 방대한 컴퓨터 파워를 이용해 암호를 풀면 비트코인이 획득되고 획득된 비트코인들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위조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 결과 비트코인으로 익명에 수수료 없이 개인대개인(P2P) 간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에 주목해보자. 첫째, 현재는 컴퓨터에 관련한 특정 지식을 가진 집단만이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두뇌·컴퓨터·전기료 그리고 일부 노동력을 투여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폭등 현상이 지속된다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 그리고 많은 일반인이 이에 편승해 수수료 수익을 챙기고 차익을 노리기 위해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과연 바람직한 금융체계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비트코인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경제체계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적 시도였다. 비트코인 외 가상화폐를 알트코인이라고 하는데 비트코인은 오픈 소스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트코인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구나 화폐 발행권을 갖도록 했으며 발행된 화폐는 상호 인정하는 거래 가치로 제3자의 개입 없이 사용된다. 이렇듯 비트코인은 사이버상에서 새로운 독립적 화폐 발행 및 유통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제시했다.
모든 문명이 그러하듯이 화폐 또한 진화한다. 지금의 화폐 시스템은 개인 간 거래를 위해서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연준·은행·거래소 등)가 개입돼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미래 사이버 세상에서 통용될 화폐는 어떤 화폐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그리고 지금의 금융 시스템에 대해 비트코인은 보이지 않는 소리로 선전포고를 하는 듯하다. 어쩜 또 다른 철학을 담은 화폐혁명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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