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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동화경제사] 童話, 凍話

■최우성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소녀의 성장담 '오즈의 마법사'

美 화폐문제 다룬 정치적 우화

페미니즘 부각한 '빨간머리 앤'

노루가족이 등장하는 '밤비'는

자연 해치는 인간 잔혹함 다뤄

꿈·희망 이면에 냉혹한 현실 분석

시대상 관통 사회경제적 보고서







1900년 출판된 ‘오즈의 마법사’ 초판 표지.


1923년 출판된 ‘밤비’의 초판 표지.


동화를 바탕으로 한 만화 ‘밤비’의 한 장면.


동화(童話)의 사전적 정의는 ‘어린이를 위해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다. 굳이 사전을 들추지 않더라도 동화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동화경제사-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런 상식과 통념을 과감히 깨부순다. 누구나 알 만한 고전 동화 15편이 현직 언론인인 저자의 예리한 시각을 거쳐 낱낱이 해부된다. 텍스트의 내적 구조를 분석한 비평서인 동시에 이야기를 둘러싼 맥락을 파헤친 사회경제적 보고서다. 저자는 15편의 텍스트 안팎을 꼼꼼히 읽은 뒤 희망찬 교훈만 가득한 줄 알았던 동화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중요한 기록물이자 증거물’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우선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는 단순한 소녀의 성장담이 아니라 화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정치적 우화다. 이 동화가 출간되기 전 열린 미국 25대 대통령 선거(1896년)의 최대 쟁점은 화폐 제도였다. ‘오직 금에만 화폐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금 본위제)’는 공화당과 ‘금과 함께 은도 화폐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금·은 복본위제)’는 인민당이 맞섰다. 인민당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은을 화폐로 주조할 수 있다면 가난한 농민계층의 생계부담이 완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누구나 화폐를 주조해 유통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노란 벽돌길은 금본위제를 상징하는 메타포이며 주인공인 도로시가 자신의 은 구두를 빼앗으려는 마녀를 무찌르는 대목은 금·은 복본위제를 간절히 바라는 농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기 위해 만든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비록 현실은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프랭크 바움은 판타지 형식을 빌려서라도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노루 가족이 등장하는 동화인 ‘밤비’도 통렬한 비판의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숲 속의 여러 생명체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주를 이루는 전반부가 지나면 평화를 한순간에 망가뜨리는 사냥꾼이 등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출간된 이 동화는 생명에 대한 찬가인 동시에 자연을 능멸하는 인간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생태·환경 서사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밤비’를 지은 오스트리아 작가 펠릭스 잘텐의 혈통은 유대인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충돌을 ‘유대인’과 ‘반(反)유대인’의 대립으로 바꿔 읽으면 어떻게 될까. ‘동화경제사’의 저자는 ‘밤비’야말로 삶의 터전에 내몰린 유대인의 처지를 호소하며 반유대인 정서를 비판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분석한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그린 ‘빨간 머리 앤’은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의 입을 빌려 “여성들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곧 좋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여성참정권을 옹호한다. 앤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19세기 초반만 해도 유럽에서는 여성이 두 다리 벌리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들어 자전거를 타는 여자를 ‘신(新)여성’이라 부르는 풍조가 유행하면서 ‘빨간 머리 앤’을 비롯한 각종 예술 작품들도 자전거를 남녀평등의 상징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남성(마차)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이동의 제약을 극복하는 여성의 이미지와 자전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누구나 한두 번은 접해본 적 있는 이야기의 심층을 파고든 ‘동화경제사’는 유익하고 흥미롭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런 묵직한 깨달음도 남는다. 동화든 소설이든 모든 예술은 세상을 향한 날 선 비판의식을 품고 있기 마련이라고. 더 나은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한 비상의 몸짓이 예술의 참모습이라고. 1만5,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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