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그라피티(벽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그리는 그림)를 훼손한 건물주에게 거액을 배송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낙서예술’인 그라피티 역시 법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예술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미국에서도 ‘획기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15일 AFP통신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뉴욕 연방법원의 프레더릭 블록 판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퀸스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건축물 ‘5포인츠(5Pointz)’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라피티 작품 45개를 훼손한 책임을 물어 건물주 제리 워코프에게 각각 15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워코프는 총 675만 달러(약 73억원) 배상 부담을 안게 됐다.
과거 공장 부지였던 5포인츠는 20여 년간 그라피티 예술의 성지로 이름을 떨쳤다.
1993년부터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건물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그림을 그려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그러나 처음엔 이들의 활동을 허용했던 건물주 워코프가 고급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재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예술가들이 건물 철거에 반대하자 2013년 워코프는 한밤중에 흰 페인트로 그라피티 작품들을 덮어버렸고, 이듬해에는 건물 철거에 들어갔다.
작품을 잃어버린 작가 21명은 2013년 소송을 제기했다. 건물 철거 계획을 사전에 알려줬다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는 등 작품을 살릴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1990년 제정된 ‘시각 예술가 권리법’을 근거로 작가의 명예나 명성을 손상할 수 있는 작품의 고의적 왜곡과 훼손은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지난해 11월 워커가 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최종 판단을 블록 판사에게 넘겼다.
블록 판사는 판결문에서 “워코프의 오만함이 아니었다면, 이들 작품의 손상은 헤아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승인을 받을 때까지 5포인츠를 허물지 않고 10개월 후에 철거했다면, 법원은 그가 고의로 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5포인츠는 유명 관광지이므로 당연히 대중은 최후 10개월간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몰려들어 이 엄청난 작품을 바라봤을 것”이라며 “이는 예술가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멋진 찬사가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술가들의 변호인 에릭 바움은 “그라피티가 다른 미술과 똑같이 연방법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며 환영했다.
[사진=연합뉴스]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