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빵을 내주었더니 나중에 이상 없는 것이 확인되면 값을 지불하러 오겠다는 손님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국제설계공모에 지명 설계자로 참가한 ‘VDK(van Dongen-Koschuch Architects and Planners)’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잠실5단지 설계공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월 종료된 국제설계공모의 대금 지급이 6개월 넘게 지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당초 서울시와 잠실5단지 재건축 조합은 지명 설계 방식으로 국내외 건축가 7개 팀으로부터 작품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따른 대가로 당선작은 30억 원의 설계비를, 참가자에게도 공모 보상비 각 5,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금은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해외 참가 2개 팀은 최근 대금 미지급에 관해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공식 항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적인 해결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국외 참가팀 항의에 국제적 망신 = 설계공모에 참여한 외국 참가팀은 ‘VDK’와 ‘투 포잠박(2portzamparc)’이다. 투 포잠박 관계자도 이메일을 통해 “서울시에 수차례 공모 보상비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문의 했지만 조합의 반대로 아직 지불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며 “지난 10월 VDK측과 공동대응하기로 했으며 아직 서울시를 법적 고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VDK는 LH 강남 보금자리 주택, 잠실 우성아파트 재건축, 신세계 빌리브하남 등 다수의 한국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VDK 관계자는 “다양한 형태의 한국 주거프로젝트를 경험했지만 이번과 같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 하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시가 국외 참가팀에게 설계비 지급 지연을 양해해 달라는 안내 이메일만 보내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VDK 측은 “그간은 서울시에 문의 형태로 이메일을 보냈지만, 앞으로는 보다 공식적 문서로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잠실5단지 국제설계공모는 서울시가 대행, 조합이 발주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고층을 50층으로 높이고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수권소위원회로 이관하는 대신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서울시의 복안이었다. 이를 위해 국내외 건축가 7팀을 초청했지만 대금 지급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명 공모는 용역 납품과 달리 초청 형식이기 때문에 수상 및 활용 여부에 상관 없이 바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다.
◇ 조합에 미루는 서울시, 꼬이는 해결 = 조합 측은 애초 설계 공모조건인 수권소위가 통과돼야 대금지급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발주처인 조합에만 대금 지급 권한이 있다며 서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6·13 지방선거’에다 서울 집값이 오르면서 5단지 수권소의 상정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조성룡 건축사는 “대금이 조합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처리는 서울시에서 해야 하는 것이므로 국제적인 망신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공모에 참가한 국내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참가팀 관계자는 “공모 발표 후 서울시에 세 차례나 대금을 집행해달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조합과 서울시가 서로 떠넘기기만 한다”면서 “공모를 위해 투입된 비용만 수억원에 이르지만 서울시 같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지자체에는 소송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설계 공모 업무를 이어받은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 관계자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재건축 인허가 권한이 없으니 실타래를 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잠실5단지 조합 관계자는 “수권소위의 빠른 통과를 조건으로 국제공모를 개최했기 때문에 아직 대금을 줄 수는 없다”며 “외국 업체를 초청해 놓고도 서울시가 선거, 집값 등을 핑계로 약속을 어길 줄은 몰랐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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