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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쫄깃하게 하던' 스릴러 여왕 정유정 "이번엔 힐링되는 작품 쓰고 싶었죠"

[소설 '진이, 지니'로 3년만에 돌아온 정유정 작가]

보노보 몸에 들어간 사육사 영혼

시니컬한 농담·재치있는 대사로

죽음 앞둔 인간의 자유의지 다뤄

"비싼 옷보다는 '신상' 좋아해

빨리 신작 만들어보고 싶어요"

3년 만에 신작 소설 ‘진이, 지니’ 출간한 정유정 작가가 23일 마포구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3년 만에 신작 소설 ‘진이, 지니’ 출간한 정유정 작가가 23일 마포구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스릴러의 여왕’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사진)이 3년 만에 신작 소설 ‘진이, 지니’로 돌아왔다. 그는 신작에서 판타지 작가로 변신하며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명성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정 작가는 전작들에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마음과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재주를 능수능란하게 부린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동물 사육사 이진이의 영혼이 영장류 보노보 ‘지니’에게 들어가며 벌어지는 사흘간의 이야기다. 몸은 보노보 ‘지니’인 채로 진이는 청년 백수 김민주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교감하며, 아름답고 신비로운 추억을 만든다.

정 작가는 최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나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이른바 ‘악의 3종 세트’라 불리는 소설을 쓰고 나니 기가 빨린 느낌이 들다 보니 스스로 힐링되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며 “신작은 성숙한 인간의 내면 세계나 자유의지를 실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태도는 정할 수 있다”며 “죽음이라는 소재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뤘다”고 덧붙였다.

‘종의 기원’ 등 기존 작품은 실제 사건이 모티브지만 신작은 개인사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 4남매 중 장녀인 자신을 혹독할 정도로 강하게 키운 엄마 등이 그 예이다. 신작에서 진이 엄마는 홀로 키우는 진이가 한 대 얻어맞고 들어오면 ‘가서 두 대를 때리고 돌아오라’고 말한다. 정 작가는 “저희 엄마도 결혼 안 해도 좋으니 네 일 하면서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진이 엄마처럼 병원에 계시다가 중환자실에서 3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의식이 없던 엄마의 영혼은 어디에 있었을지 29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다”며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간의 이야기가 바로 ‘진이, 지니’”라고 부연했다. 그는 작가의 말을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해 시작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란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 문장을 마주했던 2017년 어느 날 ‘진이, 지니’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보노보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 작가는 “인간과 가장 흡사한 DNA를 가졌고 공감 능력과 지능이 뛰어나며, 감정이 풍부하다”며 “수평적 사회관계에 기반한 모계사회를 이뤄 보노보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간 진이의 영혼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이 유인원 보노보라는 것이다. 꼼꼼한 취재로 정평이 난 그는 신작에서도 보노보, 침팬지 등의 특징을 상세하게 풀어놨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보노보 박사인 듯 네덜란드 출신의 둥물학자 프란스 드발을 비롯해 가장 정치적이고 남성적인 동물인 침팬지의 과시 행동 등을 예로 들어 보였다. 소설 속 보노보, 침팬지 등에 대한 묘사가 실감 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만에 신작 소설 ‘진이, 지니’ 출간한 정유정 작가가 23일 마포구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기자




3년 만에 신작 소설 ‘진이, 지니’ 출간한 정유정 작가가 23일 마포구에 위치한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욱기자


정 작가의 남편은 남동생 친구다. ‘밥 잘 해주는 예쁜 누나’는 현란한 말솜씨와 ‘밀당의 기술’로 집에 밥 먹으러 온 남동생 친구를 사로잡았다. 신작에는 유쾌하고 솔직한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를 떠올리게 하는 시니컬한 농담과 재치있는 대사가 눈길을 끈다.

“젊어선 황소처럼 일하고, 은퇴 후엔 늙은 소처럼 일하는 인생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37쪽) ”기도의 특성상 이런저런 수사가 많았으나 요지는 초지일관 같았다. 하루빨리 내 방을 갖게 해주십사.(38쪽) “얼마 후 닥터K의 강연이 위키백과에 실린 한 천문학자의 글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이미 표명해 버린 존경심을 취소할 길이 없었다.”(86쪽)

이처럼 일단 웃기고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독자들을 울리고 만다. 진이가 민주에게 보낸 편지에서다.

“민주에게. 뻔뻔하고 염치없는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결국 채무이행을 못하게 되었다고. 방법이 없었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마저 하지 못했어. 하나 마나 한 생각만 자꾸 떠올랐어. 떠나기 전에 신이 내게 한 가지 일을 하 수 있게 허락해준다면, 그러니까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로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허락해 준다면, 그러면 나는 내 친구의 이름을 불러볼 텐데. 가만히, 입속말로. 김민주……라고. 추신 : 나와 지니는 오래오래 너를 기억할 거야. 네 형편 없는 노래도.”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소설이 차지하던 영화 원작 자리는 지금 웹툰이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정 작가는 다르다. ‘내 심장을 쏴 라’와 7년의 밤‘은 이미 영화화됐고, ’종의 기원‘도 영화로 제작된다. 또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일본 등 20개국에 번역·출간돼 K문학 한류를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감도 높다. “차기작은 바다에 갇혀 있는 죽음의 시간에 대해 쓸 생각이긴 해요.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 죽을 때까지 글 쓰고 싶어요. 저는 비싼 옷, 비싼 액세서리 대신 싸더라도 ’신상‘을 좋아해요. 작가에게 ’신상은 ’신작‘인데, 빨리 만들어 보고 싶어요.(웃음)”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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