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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타깃 될라 말·행동조심…한시간 회의가 20분만에 끝나"

관리자급 임직원 중심 몸 사리고

사내 게시판에 제보 창구 개설

이마트 직원 "연차 사용 강제"주장

MBC아나운서·석유公 등 7건 진정

서울지하철 12개역서 상담소 운영

대기업 A사의 마케팅부서는 평소 1시간 이상 이어지는 아침회의와 임원의 잔소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16일은 달랐다. 이날도 오전8시에 임원 주재로 여성을 포함해 팀장 12명이 모여 아침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회의는 20분 만에 끝났다. 임원도 이날은 회의에서 필요한 공지만 전달했다. 평소 업무를 지시하며 거친 말을 쓰던 것과 딴판이었다. 다만 그는 회의 마지막에 “오늘부터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고 하니 모두 말조심, 입조심, 행동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자리를 떴다. 팀장들은 다소 당황한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만 보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이날부터 시행되면서 회사 곳곳에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 펼쳐졌다. 기업에서는 관리자급 임직원을 중심으로 언행을 조심하며 ‘첫 타깃’으로 주목을 받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반면 갑질 등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가능성이 큰 젊은 직원들은 수평적 문화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과연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16일 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에서 민원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서울경제가 이날 취재한 각 기업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특히 회사 내 상사들의 태도 변화가 두드러진다. 통신사 대리 류모(31)씨는 “차장·부장급이 갑자기 친절하게 변했다”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한 상사는 평소 본인 기준으로 말을 안 듣는 후배한테 ‘일 폭탄’을 던지기로 유명했는데 갑자기 자중한다”고 말했다. 금융사 사원 권모(31)씨도 “후배들 실수를 발견하면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는 등 눈치를 주던 부장이 조금 바뀐 것 같다”며 “메신저를 통해 개인적으로 주의를 주거나 따로 불러 타이른다”고 말했다. 간부직을 맡은 40대 직원들은 자칫 ‘갑질’로 비칠 수 있는 행동에 주의하고 있다. 한 대기업 그룹사의 직장생활 15년 차 팀장은 “후배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게 이전과 달리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일단 법이 시작된 만큼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끈끈한 조직문화’는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간부로 근무하고 있는 40대 남성은 “한 달에 한 번 회식비가 나오는 것을 이제는 술자리가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데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 측도 조심하는 모습이다. 화장품 제조사에 근무 중인 김모(28)씨는 “사내 게시판에 고충상담 절차가 게시됐다”며 “회사 홈페이지에 괴롭힘 제보 메뉴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괴롭힘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만큼 본사는 물론 지사에 나가 있는 임직원을 고려해 주의해야 할 언행에 대한 강의를 추가로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과 관련한 진정이 전국에서 7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첫 진정은 한국석유공사 관리직 직원 19명이 이날 오전9시 울산고용노동지청의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냈다. 이들은 “석유공사에서 20~30년간 일했는데 지난해 3월 새로운 사장 부임 후 전문위원이라는 명목으로 2~3등급씩 강등돼 월급이 깎였고 청사 내 별도 공간에 격리돼 업무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간 MBC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이들은 지난 2016~2017년 입사 후 계약 만료로 퇴사했다가 법원의 판단으로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받았지만 업무에서 격리당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이마트 포항이동점지회는 “관리자로부터 연차사용을 강제하고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스케줄 갑질을 당했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원에게 막말과 고성 등 인격모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법 시행을 계기로 공공기관·시민사회단체 차원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앞으로 한 달간을 ‘대표이사 갑질 집중 신고기간’으로 정해 사장의 갑질을 제보받겠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에게 신고해야 하는 현행법으로는 회사 조직을 장악한 대표이사의 괴롭힘은 막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시·서울교통공사·서울교통공사노조는 다음달 21일부터 격주 수요일마다 지하철 역사 내 직장 내 괴롭힘과 권리 구제를 상담할 ‘직장갑질 119상담소’를 운영한다. 을지로입구역·구의역·천호역·가산디지털단지역 등 12개 역에서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자치구 노동복지센터가 출장해 직접 상담한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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