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무렵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75)는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포르테 피아노를 만났다. 그는 이 포르테 피아노로 연주했을 때 모차르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고 모차르트 음악이 훨씬 더 극적이고 연극적인 요소가 많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모차르트는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말하는 루비모프가 해석한 모차르트 곡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펼쳐진다. 바로 오는 26일 금호아트홀 연세의 무대에서다. 최근 그는 내년 시즌부터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공식적인 은퇴선언은 아니지만 이번이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더 기대가 쏠리고 있다.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난 루비모프는 이번 공연에 대해 “모차르트의 두 가지 반대되는 면이 잘 드러내는 곡들을 보여주려 한다”며 “모차르트 하면 떠오르는 밝고 긍정적인 기쁨뿐 아니라 비극적인 운명,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곡들이 모두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1부에서 소나타 9번과 8번을 연주하며, 2부에서는 C장조 소나타 16번, 환상곡 c단조에 이어 c단조14번 소나타로 연주를 끝맺는다. 1부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나타 8번 a단조 곡에 대해 루비모프는 “모차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작곡했던 곡으로 그가 겪었던 비극이 반영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어떤 면에서는 힘 있는 곡이지만 운명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느낌과 절망스럽지만 죽음과 비극을 받아들이는 부분이 드러난다”며 “다른 모차르트의 소나타와 달리 듣기 좋은 화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끝나는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2부에서 이어지는 c단조는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선 높은 수준의 비극을 표현하고자 할 때 주로 쓰이는 코드다. 반면 소나타 9번 D장조는 완벽하게 밝은 곡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그렸다. 그는 “관객들이 모차르트의 긍정적인 면과 어두운 면의 드라마틱한 갈등을 동시에 느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루비모프는 러시안 피아니즘의 최고봉이자 러시안 스쿨의 창시자인 하인리히 네이가우스에게 사사한 러시안 피아니즘의 살아있는 계보다. 1963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현대음악과 르네상스·바로크 등 옛 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원전연주를 접하게 됐고, 이를 평생 그의 연구분야로 이끌어갔다. 음악을 향한 끝없는 원동력의 비결을 묻자 그는 “운동을 하거나 다른 건 하지 않는다”며 “대신 다른 나라의 음악을 듣는 등 흥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각 나라의 전통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그는 한국에 도착해서는 국악 연주를 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피아노를 치는 것은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 중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며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드러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