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민주주의’를 위험한 정치로 규정했던 자유한국당마저 거리에 나서면서 국회는 물론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도 국민들이 권리행사를 국회에 위임한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져버렸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당은 과거 혁신선언문에 광장민주주의를 ‘다수의 폭정’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세력이 결집하자 한국당이 더 큰 거리 정치에 나서며 ‘자기 부정’을 하게 된 것이다.
4일 국회에 따르면 한국당은 지난 2017년 혁신선언문을 발표해 “대의제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대의민주주의가 시민적 덕성의 함양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는 당시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하기 위해 촛불을 든 시민들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은 이러한 혁신 원칙에도 불구하고 지난 3일 광화문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에 당력을 총동원해 당원과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집회에 앞서 당은 전국 도당 운영위원장과 국회의원에게 “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지역과 원내외를 구분해 적게는 100명에서 400명까지 당원을 동원해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특히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당협위원장들이 공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문은 사실상 ‘강제동원령’에 가깝다. 한국당은 지난달 26일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을 수행할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오는 7일 전국 도상을 대상으로 당무감사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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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은 이날 집회에 모인 대규모 인원에 대해 “서울 도심은 상식과 정의의 물결이었다”며 자화자찬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文실정 및 조국 심판‘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전날 집회를 두고 “일평생 평범하게 살던 수많은 국민이 더는 못 참겠다, 이번에는 나도 나간다며 황금 휴일 포기하고 나온 대규모 집회”라며 “87년 넥타이 부대를 연상케 하는 정의와 합리를 향한 지극한 평범한 시민들의 외침”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당은 지난 3일 광화문 일대에 모인 당원과 지지자들의 수를 30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불과 2년 전 광장민주주의를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과는 달리 이번 집회에서 정의로운 시민들의 외침이라고 찬사를 보낸 것이다.
당내에서는 강제동원 집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온다. 국회 보좌진들이 참여하는 SNS(소셜네트워크) 페이지에 따르면 한 한국당 보좌진은 “지금 전 보좌진 강제동원령, 지역 당원 강제차출과 동원 수에 따라 당무실적 적용을 백날 한다고 국민적인 공감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뇌부를 보면 정말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보좌진 역시 “매주 토요일마다 시위한다고 뭐가 나아지냐”며 “지도부들은 제발 원내에서 잘 싸우자”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여야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본연의 역할을 내버려둔 채 광장으로 시민을 끌어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자기 부정이다. 본인들이 광장민주주의가 대의제를 위협한다고 해놓고 상대편도 그렇게 하니 세를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이 광장에 스스로 나온다는 건 대의제가 잘 안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평가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지금과 같은 광장 정치는 양쪽 다 위험하다”며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의 대결이 재현되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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