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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先立乎其大者(선립호기대자)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먼저 큰것을 굳건하게 세우면

작은 것이 함부로 못 흔들어

우리사회 극심한 갈등 풀려면

훼손할 수 없는 '공통가치' 존중을





한때 ‘일사불란(一絲不亂)’이 바람직한 사회의 기강이자 효율적인 리더십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일사불란은 글자 그대로 여러 갈래의 실타래가 있는데 그중 한 가닥의 실도 서로 얽히지 않은 잘 정돈된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은 실타래의 맥락에서 ‘질서정연(秩序整然)’의 뜻으로 확장되면서 조금도 어지러움이 없는 질서를 가리키게 됐다. 현실에서 대통령과 기업 총수를 비롯해 지도자가 현안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하면 그 말씀이 다음 단계로 재빠르게 하달돼 일순간에 집행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회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크게 발휘할 수 있다. 반면 권위주의의 특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한순간의 오판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정부 실패와 오너 리스크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강력한 리더십과 사회 기강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이해당사자가 첨예하게 맞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정책 갈등이 생기면 청와대를 비롯한 현안의 장소에서 시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이해 충돌이 생기면 현장에서 시위가 발생한다. 특히 서울 사대문 안에는 주말이 되면 시위의 일상화라고 할 정도로 시위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시위 자체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만큼 불편하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다. ‘나’도 권리가 침해당했을 경우 시위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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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갈등이 생기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과 관련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비용도 문제이지만 갈등 해결이 장기화되면 정부와 시민 그리고 이해 당사자 사이의 불신만 커진다. 아울러 모든 현안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면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게 된다. 정치가 갈등 조정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늘 선거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상시적인 선거는 정치가 미래의 예측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낳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갈등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풀어갈 수 없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되는 이해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맹자가 말했던 귀와 눈의 감각기관과 마음을 구별하는 논의를 살펴볼 만하다. 감각기관은 사고를 하지 못해 유혹에 가려져 대상 쪽으로 훅 끌려가버린다. 끌려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이목지관불사 이폐어물 물교물 즉인지이이의). 반면 마음은 앞뒤를 따져볼 수 있으므로 제대로 생각하면 제대로 길을 찾고 그렇지 못하면 길을 찾지 못한다(심지관즉사 사즉득지 불사즉득지).



맹자에서 이목지관과 심지관은 각각 사람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이목지관은 귀에 들리는 소리와 눈에 보이는 색깔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전체적으로 따지지 못하고 좋으면 그냥 그 방향으로 끌려간다. 반면 심지관은 이목지관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이 길을 잃지 않고 제 방향을 찾아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려면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 중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먼저 큰 것을 굳게 확립해 작은 것이 그 지위를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선립호기대자 즉기소자불능탈야).

우리도 방향과 이해를 둘러싸고 갈등하더라도 주체는 서로가 해칠 수 없는 공통분모에 대한 동의와 공감이 필요하다. 이러한 동의와 공감이 없으면 한 번의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은 원인이 돼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미시적인 측면과 구체적인 사안에서 날카롭게 부딪치더라도 서로 훼손할 수 없는 공통분모의 큰 것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대로 하늘이 사람에게 준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선물이다. 선물을 받았으면 방치할 것이 아니라 선용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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