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석유산업 상류인 석유개발보다
하류부문 정유·유통에만 집중투자
상류 부가가치 하류의 10배 넘어
상하 고른 발전으로 시너지 효과를
인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를 이루고 경제활동을 해왔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농업 중심의 1차 산업 사회는 2차 산업(제조업)과 3차 산업(서비스업) 사회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산업 전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주의 깊게 살펴볼 사실은 1차 산업의 발달로 축적한 잉여 식량이 2차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고, 2차 산업 발달 결과 확보한 풍족한 물품이 3차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2차 산업의 발달은 농기계 보급처럼 1차 산업의 효율성을 더 높이고 3차 산업의 발달은 2차 산업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결론적으로 1·2·3차 산업 중 하나가 취약한 경제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불안한 성장을 하게 된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당 기간 경제 위기로 고난을 겪었다. 만성적 식량 수입국인 중동에서는 러시아의 밀 생산량 감소에 따른 식료품 가격 폭등이 사회변혁 운동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산업 전반의 균형 잡힌 발전이 없으면 건실한 경제성장은 어렵다.
거시경제 차원의 산업 발전 원칙을 특정 산업에 적용해도 똑같은 이론이 성립한다. 석유산업도 상류 부문(석유개발)과 하류 부문(정유·유통), 관련 서비스 부문이 고루 발전해야 건실하고 안정적인 산업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을 집중 육성했다. 특히 우리나라 정유 및 석유화학 기업들은 짧은 기간에 세계 유수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과 규모를 확보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여러 여건상 석유산업 하류 부문에만 투자가 집중돼 균형 있는 발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정유공장과 석유화학 공장에 필요한 원료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해 들여와야 하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시점마다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원유를 비싼 가격으로 들여온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석유산업 상류 부문이 발달하면 경제에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 첫째는 부가가치의 제고이다. 석유산업의 하류 부문에 속하는 정유업과 석유화학은 우리나라 총생산 및 수출에서 매우 높은 기여도를 보이고 있지만 상류 부문의 부가가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메이저 석유회사로 상·하류 사업을 아우르는 영국 BP사의 경우 하류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5%인 데 비해 유전 개발 같은 상류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10배인 25%에 달한다.
둘째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 유가 상승에 대한 헤지(hedge)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원유수입에 804억달러를 지불했다. 2017년과 비슷한 물량을 수입했는데도 유가 상승으로 인해 비용은 30% 이상 더 들었다. 만일 석유개발 산업이 발달해 국내에서 원유가 개발됐거나 해외 석유개발에 참여해 싼값으로 원유를 도입할 수 있다면 유가 상승분의 일부분은 우리나라의 이익으로 돌아와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경상수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는 석유산업 상류 부문이 서비스 산업 발전의 마중물로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인근 지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석유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시추선 및 장비의 유지보수, 서비스 업체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석유산업의 상·하류 부문이 골고루 발전해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면 경제 발전에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석유산업 상류 부문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농업 중심이었던 우리나라가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업 중심으로 발전했듯 꾸준한 관심과 투자는 산업의 지도를 바꿀 수 있다. 석유자원의 확보는 여전히 안정적 경제활동을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 요소라는 점에서 석유산업 상류 부문에 대한 업그레이드의 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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