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난 그레츠키는 여섯 살 때 열 살 유소년팀에서 뛸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하키 옷이 커서 상의를 팬츠 오른쪽에 집어넣고는 했는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입단과 함께 85경기에서 378골을 넣더니 열세 살 때 1,000골을 넣는 기염을 토했다. 고교 팀에서 하키 전설 고디 하우의 백넘버 9번을 원했지만 다른 선수가 이미 달아 99번으로 했는데 이것이 역사적인 번호가 됐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그레츠키는 2년 만에 최고 득점 선수에 올랐고 이후 8년 연속 MVP를 차지했다. 소속팀 에드먼턴 오일러스는 4차례나 최고 영예인 스탠리컵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레츠키는 구단주의 자금난에 1988년 캐나다를 뒤로 하고 LA킹스로 전격 트레이드된다. LA킹스는 1993년 스탠리컵 결승에 오를 만큼 강팀이 됐으며 이후 뉴욕 레인저스로 옮겨 60개의 신기록을 남기고 1999년 링크를 떠났다. 등번호 99번은 NHL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는데 이런 사례는 메이저리그 재키 로빈슨까지 두 명뿐이다.
그레츠키의 “나는 퍽(하키 공)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퍽이 갈 곳으로 움직인다”는 말은 아직도 회자된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아이폰을 소개하며 이 말을 인용해 변화의 욕구를 얘기했다. 시대를 풍미한 그레츠키이지만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유격수가 되고 싶었다”고 해 화제가 됐다. 그의 말에 울림이 있었던 것일까. 류현진 선수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입단식에서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는 “캐나다가 99번을 LA에 빌려줬었는데 류현진이 99번을 다시 캐나다로 가져왔다”며 그레츠키를 소환했다. 류현진이 새 둥지에서 그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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