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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충돌하는 세계] 과학과 섞이자…예술의 맛 깊어졌네

■아서 I.밀러 지음, 문학동네 펴냄
세상을 표현하는 공통적 고민
과학-예술 경계 허무는 계기로
AI 알고리즘이 빚은 그림·음악
빅데이터 시각화한 영상작품 등
새로운 예술 '아트사이' 탄생시켜

[책꽂이-충돌하는 세계] 과학과 섞이자…예술의 맛 깊어졌네

1966년 미국 뉴욕 주방위군 본부 건물 전시장에는 당대의 내로라 하는 유명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문 앤디 워홀, 변기 하나로 현대 미술의 새 지평을 열어낸 마르셀 뒤샹,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연주곡 ‘4분33초’의 작곡가 존 케이지, 정크 아트의 창시자 로버트 라우센버그, 비트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린 수전 손태그까지. 이 외에도 수천 명에 달하는 인파가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에 몰려들었다.

뉴욕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전시의 이름은 ‘아홉 개의 밤: 연극과 공학’이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첫 대규모 행사로 예술가 10인의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빌리 클뤼버를 포함한 30여명의 공학자가 당대의 최첨단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작품들을 대거 전시했다. 케이지는 전화기를 사용해 무작위로 뉴욕 시내와 전시회장에서 수집한 소리를 실시간으로 연주하며 대중에게 선보였다. 라우센버그는 전선이 연결된 라켓으로 공을 칠 때마다 48개의 조명이 하나씩 꺼지는 연출로 관객을 서서히 어둠 속으로 초대했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미술계를 뒤집을 폭탄 같은 전시”라고 표현한 이 행사는 과학과 예술이 융합되는 현장과 함께하려는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책꽂이-충돌하는 세계] 과학과 섞이자…예술의 맛 깊어졌네

신간 ‘충돌하는 세계’는 예술계와 과학계가 어우러져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기원을 추적한 책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르네상스 시대와 그 이전에도 과학적 사고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는 많았지만, 물리학 교수이자 전위예술가인 저자는 두 분야가 본격적으로 통합된 출발점으로 ‘아홉 개의 밤: 연극과 공학’ 전시를 꼽는다. 저자는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목적이던 이 전시 이후 50년간 이어져 내려온 새로운 예술 사조를 ‘아트사이’(artsei)라 정의하며 이 흐름에 참여한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새로운 예술 사조를 들여다 본다.

‘세상을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담아 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오랜 세월 과학과 예술이 함께 품어 온 고민이다. 그 덕분에 두 분야는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헬리콥터와 인체비례도 등 과학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례 외에도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은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자기장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으며, 물리학자 가브리엘 리프만은 컬러사진을 발명하기에 앞서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저자는 오늘날의 수많은 작가가 예술가인 동시에 과학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행위예술가 오를랑은 성형수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육체를 왜곡한 신체예술을 선보였으며, 에두 아르도 칵은 해파리 유전자를 주입해 어둠 속에서 형광으로 빛나는 살아있는 토끼로 유전자변형 미술을 개척했다. 컴퓨터 공학자인 켄 펄린은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기 위해 개발한 펄린 노이즈로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그린 그림과 작곡한 음악, 원자력 현미경을 통해 촬영한 나노 단위 수준의 산맥 이미지, 빅데이터를 시각화해 미학적으로 재가공한 영상 등 과학과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한 무수한 작품이 대중을 찾아오고 있다.

저자는 세월이 흐를수록 기존에 알고 있던 예술과 과학,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기술을 사용하며 성장한 세대가 늘어날수록 과학을 도입한 예술가, 예술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과학자들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처음 정의한 ‘아트사이’에 대해 “한때 보기 흉하거나 충격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던 뒤샹, 피카소, 아인슈타인 등의 아이디어가 오늘날 예술 유산의 일부가 됐다”며 “미래에는 이러한 형태의 작품이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정리한다. 2만2,000원.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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