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수락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녹화 강의로 진행하게 됐다. 난생처음 학생들이 없는 텅 빈 교실에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하는 어색함 속에 강의를 마쳤는데 저장이 안 됐다. 다음 날 새로 녹화했는데 반복에 의한 학습능력 덕분인지 둘째 날이 나았던 것 같다.
올봄 전국 대학에서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이래 시행착오가 잇달았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서버가 다운되기도 하고 간신히 진행되던 실시간 강의가 끊기는 사례도 여럿 있었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오래된 동영상을 올려 비난을 받은 교수들도 상당수다. 한 방송사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학 온라인 강의에 대한 불만이 65%라고 한다.
9일부터 고3·중3 학생을 시작으로 초·중·고교에서 온라인 교육이 시행되면 훨씬 더한 혼란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요한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학교도 많고 컴퓨터가 없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온라인 교육에 익숙하지 못한 교사들이 태반이며 갑자기 시행하느라 콘텐츠를 만드는 데도 애로가 많다.
이 모든 문제가 코로나19로부터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정보화 사회의 요구를 외면한 채 50년 전 교실에 모여 선생님 말씀을 받아적던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원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환경을 구축한 한국의 우수한 두뇌를 지닌 학생들이, 정작 학교 수업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비율은 3%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끝에서 두 번째다.
이 기회를 온라인 교육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람을 만든다는 교육의 특성상 대면교육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를 정보통신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데이터베이스에 의한 관리 및 평가 등 온라인 교육과 잘 연결할 때 교육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대학의 온라인 교육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 급선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운영 기준에 따르면 일반 대학의 원격수업은 개설된 총 교과목 수의 100분의20을 초과하지 못하게 돼 있다. 원격수업 학점을 인정받으려면 1학점당 콘텐츠 진행 시간이 25분 이상이 되도록 제작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는 대면수업이 기본이고 원격수업은 이에 비해 교육 성과가 떨어진다거나 학생의 몰입도가 낮다는 식의 고정관념에 기초를 둔다. 코로나19의 긴박한 상황으로 교육부가 이 규제의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했지만 폐지해야 마땅하다. 지난 2014년 개교해 하버드 대학교보다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미네르바 대학은 모든 강좌를 온라인으로만 운영한다.
초·중·고교에서는 우선 컴퓨터를 사기 힘든 저소득층을 지원해야 한다. 온라인 개학에 맞춰 쓸 수 있도록 컴퓨터를 지원한다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끝나면 컴퓨터를 회수하겠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마구 돈을 뿌리면서도 학생들의 배움의 도구인 컴퓨터는 줬다가 도로 빼앗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학교의 디지털 장비를 보강하는 일도 필요하다. 교사들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수량의 촬영장비와 전송시설을 갖추고 인터넷 서버 용량 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원격수업을 위한 교사들의 연수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일회성 수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운영해야 한다. 원격수업을 위한 능력 계발을 교사의 역량 진단에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고령사회에서는 평생교육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온라인 교육 활성화는 평생학습의 의지를 높이고 방식을 습득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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