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에 대해 거침없이 칼날을 휘둘러온 수사검사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CNN방송에 따르면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버먼 지검장에게 서한을 보내 “당신이 물러날 의사가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오늘부로 해임을 요청했고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고 통보했다. 바 장관은 이어 상원에서 후임을 인준할 때까지 차석인 오드리 스트라우스가 지검장 대행을 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후임자가 올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겠다면서 정상 출근했던 버먼 지검장도 “즉시 사무실을 떠나겠다”며 통보를 받아들였다. 미국 언론들은 바 장관이 지검장 대행으로 스트라우스 차장 검사를 지명한 것이 버먼 지검장의 마음을 바꾼 것 같다고 해석을 내놓고 있다.
2018년 취임한 버먼 지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한 마이클 코언을 기소했고 트럼프 재단의 선거자금법 위반을 수사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루디 줄리아니를 조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버먼 지검장의 교체 배경엔 트럼프 대통령 쪽으로 칼날을 세운 수사가 문제가 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은 주가조작을 비롯한 대형 화이트칼라 범죄수사로 ‘월가의 저승사자’란 별칭을 갖고 있다. 미 전역 93곳의 연방검찰청 가운데 명성이 가장 높고 소속 검사들의 자부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검사 해임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버먼 지검장의 해임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거리를 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버먼 지검장을 왜 해임했느냐는 질문에 “그건 법무장관에게 달린 일이다. 법무장관이 그 문제를 맡고 있고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해임했다는 바 장관의 서한과 배치되는 발언인 셈이다.
버먼 지검장의 교체 권한을 두고서는 논란도 있다. 통상 연방 지검장은 대통령이 지명해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버먼 지검장은 ‘공석인 지검은 법무장관이 120일간 임시 지검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지명을 받았고, 이후 뉴욕 연방법원에 의해 지검장이 됐다.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지검장이 되지 않은 만큼 해임과 교체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게 일부 현지 언론의 지적이다.
미 언론들은 이번 수사검사의 해임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비일비재한 행태라고 지적한다. 버먼 검사장 해임을 포함해 잇따라 ‘금요일 밤’ 기습 발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을 세웠던 관료들을 해임했었다.
지난 4월3일 밤 10시 마이클 앳킨슨 정보기관 감찰관의 해임했다. 지난달 1일 오후 8시께에는 보건복지부 감찰관 크리스티 그림, 15일 오후 10시에는 스티브 리닉 국무부 감찰관의 해고를 발표했다. 이들은 각각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나 코로나19 대응,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인사권 남용 의혹 등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한 결정을 한 관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요일 밤 학살’ 논란과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이는 선례가 많은 정치적 속임수이며, 트럼프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이 전략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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