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진단키트와 마스크 같은 ‘K-방역물품’이 주목 받은 데 이어 한국이 주요 의약품 생산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과 안전성에 최근에는 주요 바이오 기업들의 설비투자로 규모의 경제까지 갖추면서 ‘K-플랜트’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바이오·제약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의약품 제조시설이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 유행으로 각국 기업이 백신·치료제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며 양질의 생산시설 확보가 최대 과제로 부상했고, 국내 기업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는 모양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 19 백신 위탁 생산 물량을 잇달아 따내고 있다. 지난 13일 미국 바이오기업 노바백스는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인 ‘NVX-CoV2373’의 항원 개발과 생산,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 등을 뼈대로 하는 위탁개발생산(CDMO)를 맡겼다. 이 물질은 임상 1상에서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됐으며 오는 10월 3상 진입이 기대된다. 백신 개발이 성공하면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공장 L하우스에서 완제품이 만들어져 세계로 팔려나간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달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AZD1222’의 위탁생산(CMO) 계약도 체결했다. 이 물질은 세계 코로나19 백신 가운데 가장 빠르게 임상3상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L하우스 연간 생산량을 기존 1억 5,000만 도즈(사용량)에서 3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지난 11일 세계 최대 규모(25만6,000ℓ) 4공장 증설 계획을 밝힌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역시 코로나19 국면에서 기회를 잡았다. 그간 바이오제약 기업들은 대개 자체 생산시설을 활용했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신약을 안정적으로 개발하고 공급하기 위한 제2, 제3의 물리적 공간이 필요해진 것. 이 같은 다원화 정책에 힘입어 CMO와 CDO를 대폭 늘린 게 관련 전문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호재로 작용했다. 또 코로나19 항체치료제 CMO 물량까지 늘며 기존 1~3공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4공장 투자에 나선 것이다. 특히 언택트 시대를 맞아 영업이 어려워진 가운데에도 가상현실(VR) 공장 견학 같은 대안 마케팅을 주력한 성과도 한몫했다.
유럽과 미국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점유율을 높여가는 셀트리온(068270)도 2023년 인천 송도에 제 3공장을 착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20만ℓ 규모인데, 현재 1~2공장을 합친 양(19만ℓ)을 웃돈다. 셀트리온은 2030년까지 약 40조원을 투자해 한국을 세계 바이오·케미컬 의약품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시킨다는 ‘비전 2030’을 지난해 발표했는데 목표에 점점 다가서는 셈이다. 셀트리온은 올해 1·4분기 유럽시장에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가 5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도 진행 중이어서 성공 여부에 따라 ‘K-바이오’, ‘K-플랜트’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다.
JW생명과학(234080)은 지난해 6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종합영양수액제 ‘피노멜’을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국내 제약사가 만든 수액이 유럽 허가 문턱을 넘어선 최초사례다. JW생명과학은 지난 6월 글로벌 의약품제조사 ‘박스터’와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영양수액제 개발·공급계약을 맺을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1974년 JW그룹이 선진 수액 생산시스템을 견학한다며 박스터를 방문했는데, 2012년에는 박스터가 JW의 영양수액 판권을 달라며 찾아올 만큼 경쟁력을 높였다”고 전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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