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우리 경제 본질적으로 침하… 시장이 제대로 작동 안해 위기 불렀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기업이 시장 신호보다 정부 눈치 더 보면 경쟁력 확보 요원

규제 혁파와 감세 등으로 기업하기 좋은 운동장 만들어야

기업규제 3법 일본 같으면 5~10년간 토의해 결정할 사안

강성노조가 몸통 흔드는 구조 개혁해야…노동유연성 필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이 예상되는 등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무려 23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집값과 전셋값은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기업규제 법안을 대거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낸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가 본질적으로 침하하고 있다”며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과 외환위기를 모두 경험한 김 이사장을 찾아 경제위기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시장의 징벌을 받은 것”이라며 “시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성형주기자




-공직에서 물러나신 후 어떤 일에 힘을 쏟고 계시는지.

△1997년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뒤 20여년 동안 연구활동을 계속해왔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을 맡아 연구소를 키웠고 시장경제연구원을 직접 만들었다.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잠깐 외도했지만 줄곧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연구활동을 했다. 하나는 어떻게 시장원리를 적용해 모든 경제 이슈를 풀어갈 것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의 세 주체인 정부·기업·소비자(가계) 중 기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국가 이익과 직결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얼마 전에 낸 회고록에서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경제가 잘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외환위기 직전에도 금융개혁안을 만들어놓고 이를 통해 위기극복의 계기로 삼으려 했었는데 정치적 고려 때문에 못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이 와서 제일 먼저 이것을 요구하자 끽소리도 못하고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성장의 저력이 남아 있는데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한국 경제가 국제 경쟁력과 생산성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경쟁력이 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나가면 회복될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경쟁력이 본질적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경쟁력이 나빠지고 있다고 보는가.

△경쟁력은 국내외 시장에서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키워진다. 기업이 시장에서 두 신호(경쟁자의 생각·행동, 소비자의 선택)에만 집중하고 정부에 별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구조 속에서는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기업은 시장의 신호보다 정부 생각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에서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자영업자들이 붕괴되고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구호로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내걸었다. 그 바탕에는 정부가 유능하고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내가 정부에서 30년간 일해봤지만 국민 평균 수준 이상의 정부는 존재할 수 없었다. 정부가 예측 불가능한 세계 경제 상황에서 기술 발전 방향 등을 분석하면서 모든 것에 대응해나갈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나섰다. 현 정부는 사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경제사상을 갖고 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주 52시간제 도입을 강제했지만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임금은 정부와 기업이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소비자가 주는 것이다. 소비자가 물건 구매에 동의할 때 그 임금은 성립하지만 동의하지 않으면 기업이 인원을 줄이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결국 자영업자들이 생산을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철학자 칼 포퍼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말했듯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

-요즘 기업들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기업을 운영하기가 IMF 때보다도 훨씬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어려움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해왔던 반도체·2차전지·조선·석유화학·철강·자동차 같은 산업들의 기초가 무너지면 안 된다. 그런데 이게 무너질까 걱정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고갈되는 기업들의 체력을 어떻게 복원시킬 수 있는가.

△정부가 복원시켜주는 게 아니라 기업 스스로 복원하는 것이다.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절실히 의식하고 기업가정신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정부는 시장을 존중해주고 투자의욕을 북돋워주기만 하면 된다. 기업이 잘되게 하는 첫째 조건은 규제를 줄이는 것이다. 경쟁 제한이나 독점에서 벗어나게 하되 환경 보호나 소비자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풀어줘야 한다. 두 번째는 너무 많은 세금을 조정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기업가정신이 살아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이 대기업 규제들을 쏟아내고 있다.

△재벌 문제가 커진 배경에는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 정부가 고도성장·경제제일주의 정책을 펴면서 대기업과 손잡고 밀고 나갔기 때문에 빚어졌다. 정부가 부실기업들을 재벌들에 다 떠넘겼다. 이러다 보니 정부는 기업이 요청하면 안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불공정, 독점, 양극화, 중소기업 소외 같은 문제들이 생겼다. 정부가 최대의 경쟁 저해 사범이라는 얘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업규제 3법과 관련해 여당에 동조하고 있는데.

△김 위원장은 재벌 문제를 경제 효율성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 문제로 본다. 나는 만약 재벌이 다소 문제를 갖고 있더라도 가장 효율적이라면 그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에는 우리 재벌 시스템의 장점을 부러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기업 규제는 현행 법규 강도로 충분하다. 또 규제하더라도 경제 상황을 고려해 실행해야 한다. 기업이 죽을 지경인 지금 이런 법을 들고 나온 것은 죽으라는 얘기다. 미국도 경제가 어려울 때는 독점법 적용을 완화한다. 기업규제 3법과 같은 법률을 만들려면 일본은 5~10년가량 토론한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 나섰다.

△ILO는 기본적으로 노조 편향 기구다. 국제기구라고 해서 다 균형감각을 갖고 각국에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협약 하나하나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노사관계를 보는 근본적 시각이 중요하다.

-노사 문제는 어떤 점에서 심각한가.

△먼저 노조 조직률이 10% 남짓에 불과하다. 이는 근로자 대부분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조 간부들이 이미 귀족화해 있다. 이들이 기존 가입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게 문제다. 이제는 노조들이 경영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기업주에 비해 노동자들이 약해 노동 3권을 인정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역전돼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이는 노사 문제를 경제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노사관계를 경제 문제로 본다는 의미는.

△노동시장도 시장원리에 따라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근로자의 수요가 많아지면 노조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근로자들이 남아돌면 기업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게 시장원리다. 그런데 현재 노사관계의 모든 제도가 시장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어놓았다. 소수의 강성노조, 노조전임자 제도에 의해 특권화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노조가 10여배에 해당하는 노사관계 전체를 마음대로 흔드는 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나랏빚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외환위기가 벌어지던 1997년은 대선의 해였다. 대선 때는 항상 예산이 늘게 마련이었지만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예산 증가율을 3%로 억제하기로 했고 경제수석으로 있던 나도 동의했다. 3%라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동결한다는 의미다. 여당 당직자들이 “선거에서 지면 다 끝이다. 너희가 책임질래?”라며 삿대질을 해댔다. “돈만 풀면 선거에 이기느냐”며 맞대응했다. 그렇게 해서 지킨 게 오늘의 재정이다. IMF 때 어려웠지만 국가 재정이 튼튼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4% 가까이 올라왔다.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확대로 양극화가 심화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겠다고 했다. 정규직화는 신분을 보장해주겠다는 뜻도 있지만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얘기다. 그러면 기업이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기업은 성장도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공장 문을 닫거나 근로자를 줄여야 한다. 근로자를 줄일 수 없다면 결국 부도난다.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자명하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우리나라 양극화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0.35로 위험 수위에 접근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0.45를 넘어 훨씬 더 나쁘다. 북한은 기초 통계가 없지만 짐작하건대 0.8 정도 되지 않을까. 경제를 사회주의적으로 운영할수록, 경제가 경직될수록,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을수록 소득격차는 더 커진다.

-부동산 시장이 수많은 대책에도 안정되지 못하고 있는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이후 23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 현 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 가장 비난받는 부문이 부동산 정책이다. 시장의 징벌을 받았다. 시장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장을 존중하지 않다 보니 빚어진 것이다. 시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가격 탄력성이 없는 토지 공급에만 집중하면 된다. 농지·산지·군사용지 등 수십 가지 법률로 묶인 토지를 적절히 풀고 개발해 경매 등 시장가격으로 내놓으면 된다.

-한국 경제에 어떤 위기가 오고 있는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기업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점과 이 같은 시스템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이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풀어갈 수 없다.

He is…

194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경기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디딘 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대외경제조정실장에 이어 김영삼 정부에서 철도청장·공정거래위원장·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냈다. 고도 성장기와 1997년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의 영광과 몰락의 순간을 모두 경험한 산증인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