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형철의 철학경영] 경쟁을 즐겨라

전 연세대 교수

<134>레드오션서 윈윈하는 법

자유 시장경제서 경쟁 불가피

블루오션 진입 기회 쉽지않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공정한 규칙 지키며 살아가야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여름방학만 되면 시카고에서 뉴욕 맨해튼으로 온 가족이 이주한다. 당시 웬만한 호텔의 하루 방값이 20만~30만원 하던 시절이다. 처형이 맨해튼에 살고 있었기에 무조건 쳐들어 갔다. 하루는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으러 델리(분식점)에 갔다. 그 집은 원래 이탈리아 출신 사람이 운영하던 곳인데 한국 사람이 샀단다. 바로 길 건너편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델리가 또 있다는 데도.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은 기본 상도(商道)가 없다. 다른 어떤 나라 사람도 이렇게 안 한다”고 말했단다. 필자도 동의했다. 참 한심한 한국 사람들이라고.



몇 년 뒤 다시 맨해튼을 찾았다. 그 근처에 가봤더니 웬걸. 동네 곳곳에 한국교포가 운영하는 델리가 다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다 잘되고 있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이랬다. 한 사람이 잘된다고 하니 또 다른 사람들이 뛰어들었고 너도나도 다 델리에 몰렸다. 델리만이 아니다. 꽃집도 사정은 비슷했다. 과일가게도 마찬가지다. 맨해튼을 한국 사람들이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도매시장은 이탈리아 사람과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한국인 소매상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고 했다. 왜냐면 한국 소매상에게 잘 못 보였다가는 아예 도매상 문을 닫아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치열하게 경쟁한 결과 우리가 다 차지했다. 이국땅에 와서 우리끼리 경쟁한다고 한심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던 필자가 순진했다.

학부 시절에 친구들이랑 포천에 놀러 갔다가 맛있게 먹은 갈비집이 있었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원조 간판이었다. 그러나 어느 집이 진짜 원조 집인지 찾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줄 많이 서 있는 집이 원조다. 먹어보면 맛이 역시 틀림없다. 그런데 바로 옆집에서 파리를 날리는 집 주인은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아니 정말 멍청하지 않은가. ‘다른 데 가서 다른 간판 달고 열심히 장사하면 되지, 왜 하필 바로 옆에서 동일품목으로 경쟁하려고 하는가’라고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나는 사실 그 집 주방장 출신이요. 지금 주인은 카운터 지켰지 음식은 내 손맛이 진짜요.”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그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우선 갈비집 숫자가 엄청 많아졌다. 그리고 그 많은 갈비집이 다 사람들로 북적였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집이 진짜 원조 집인지 찾는 데 실패했다. 할 수 없이 그런대로 사람들이 꽤 많은 집에 들어가서 먹었다. 뜻밖에 맛이 꽤 좋았고 가격도 착했다. 아마도 서로 원조경쟁을 한 결과 모두의 가성비가 올라간 결과가 아닐까. 치열한 원조경쟁의 결과로 그 동네가 아예 갈비라는 품목을 다 석권한 것 같았다. 경기도 이천의 한 지역 소머리국밥 집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골목 상권들이 다 이런 경쟁의 결과다. 마치 송이버섯 군락과 같이 한군데 모여 윈윈한 것이다.

중국에서 고급 백주를 잘못 고르면 가짜를 사기 십상이다. 공항 면세점에서 사도 가짜가 있다. 심지어 공산당 간부를 통해 구입을 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중국에서 유통되는 고급술의 총량은 실제 생산량을 훨씬 웃돈다고 한다. 그러니 가짜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짜에도 급수가 있다. 1급 가짜 제조자를 잡아보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실 전직 공장장이다. 지금 공장장은 내 후임이라서 잘 아는데 실력이 떨어진다.” 이 정도면 두 손 두 발 다 들 판이다. 아무리 그래도 상표를 도용하면 안 되지 않겠나.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이 아예 없는 블루오션에 누구든지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이 어디 말만큼 쉬운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자유롭게 살아라. 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라. 단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